행복은 붙잡는 것이 아니라 심기는 것이다

마틴 로이드 존스가 시편 1편을 네 편의 설교로 풀어낸 『복 있는 사람』을 읽고 정리한 서평. 행복을 목표로 삼을수록 놓치는 이유, 시냇가에 '심긴' 나무라는 이미지, 그리고 두 길로만 나누는 구도가 남기는 아쉬움까지 함께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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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복 있는 사람 표지

복 있는 사람

True Happiness

저자
마틴 로이드 존스
옮긴이
홍종락
출판사
두란노
출간
2021
읽은 날
2026년 8월 12일

“복 있는 사람은 바람이 불지 않는 인생을 사는 사람이 아니라, 바람이 불어도 날아가지 않을 뿌리를 가진 사람이다.”

한 줄 평

내가 사랑한 설교자

로이드 존스는 한 구절을 가지고 한 편의 설교를 해내는 사람이다. 박식한 지식과 오랜 숙고 위에서 가르치고, 열정적이면서도 지독하게 논리적이다. 인생에 닥친 문제들을 성경적으로 바르게 풀어내는데, 그게 가능한 이유는 그가 단순한 설교자가 아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하나님과 친밀하게 교제하는, 하나님과 가까운 사람이었다.

『복 있는 사람』은 시편 1편을 네 편의 설교로 풀어낸 짧은 강해집이다. 원제는 《True Happiness》, 국내에는 홍종락의 번역으로 2021년 두란노에서 나왔다. 표지에 적힌 부제가 “복의 창조주가 전하는 최고의 인생"인데, 책을 다 읽고 나면 저 ‘창조주가 전하는’이라는 말이 그냥 수식이 아니라 이 책의 핵심 논지라는 걸 알게 된다.

로이드 존스는 본래 런던에서 촉망받던 의사였다가 목회자의 길로 들어섰고, 1938년부터 30년 동안 웨스트민스터 채플에서 설교했다. 그래서인지 그의 글에는 증상만 달래지 않고 병의 뿌리까지 찾아가려는 의사의 기질이 남아 있다. 이 책에서도 그는 “어떻게 하면 기분이 좋아질까?“보다 “인간은 왜 행복을 원하면서도 계속 불행해지는가?“를 먼저 묻는다. 책은 ‘율법을 즐거워하는 사람’, ‘바람에 나는 겨’, ‘시냇가에 심은 나무’, ‘서로 다른 두 길’이라는 시편 1편의 네 장면을 따라간다.

철학은 수포로 돌아갔다

책 초반에 그는 대놓고 이렇게 쓴다. 철학자들도 행복의 문제를 탐구했고 유토피아에 대해 쓴 사람도 있었다고. 철학의 본질은 행복 추구, 복의 추구였다고. “그러나 아시다시피, 철학은 모두 수포로 돌아갔습니다.”

이어지는 문장이 “하지만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행복 처방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처방! 그래서 저는 성경으로 돌아갑니다"이다. 처방이라는 단어를 쓰는 게 역시 의사 출신답다. 그리고 그가 성경으로 돌아가는 이유는 단순하다. 성경은 인간의 책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시"이기 때문에, 다른 모든 행복론과 층위가 다르다는 것이다.

이 대목은 사실 호불호가 갈릴 수 있다. 철학을 한 문장으로 정리해 버리는 건 좀 거칠다. 다만 그가 하려는 말은 철학이 무가치하다는 게 아니라, 인간이 인간의 자원만으로 자기 행복의 근원이 될 수 있느냐는 질문에 가깝다.

좋은 의사는 약부터 주지 않는다

그가 시편 1편을 다루면서 제일 먼저 붙드는 건 뜻밖에도 부정문이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행복을 설명하겠다면서 하지 말아야 할 일부터 말한다. 왜 성경이 부정적인 사실에서 시작하는지, 그는 세 가지 이유를 든다. 그중 세 번째가 가장 인상적이었다.

“환자에게 다짜고짜 약을 처방할 것이 아니라 먼저 그의 상태를 면밀히 살피는 데 시간을 사용해야 합니다.” 그리고 바로 다음 문단에서 우리의 반응을 이렇게 옮긴다. “다른 것을 주세요. 통증을 가라앉히고 기분이 좋아지게 만드는 것을 주세요.” 안 된다고, 좋은 의사는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고 그는 잘라 버린다.

이 장면이 이 책 전체의 태도다. 우리는 진통제를 원하고, 그는 진단서를 내민다.

그런데 그 진단 부분에서 ‘따르고, 서고, 앉는다’는 동사의 진행이 눈에 들어온다. 처음부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는 사람은 드물다. 어떤 생각을 잠시 따라가고, 그 길에 익숙해지고, 마침내 그곳을 자기 자리로 삼는다. 로이드 존스는 죄를 몇 가지 나쁜 행동의 목록으로 축소하지 않는다. 죄는 하나님 없이도 내가 삶의 주인이 될 수 있다는 전제이며, 그 전제가 습관과 인격으로 굳어지는 과정이다.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휴대전화가 떠올랐다. 처음에는 잠깐 다른 사람의 의견을 구경한다. 그러다 분노와 조롱이 가득한 공간에 오래 머물고, 나중에는 나도 같은 어조로 사람을 평가한다. 알고리즘은 내가 무엇을 믿어야 하는지 명령하지 않는다. 다만 반복해서 보여 주며 어느 자리에 앉을지를 유도한다. 시편 1편은 고대의 지혜문학인데, 사람의 생각이 환경과 반복을 통해 어떻게 형성되는지를 놀라울 만큼 현대적으로 포착한다.

행복을 결정하는 것은 상황이 아니다

책 43쪽에 이 책의 명제라고 할 만한 문장이 있다. 나도 읽다가 여백에 “관계와 존재 → 행복"이라고 적어 놨더라.

바로 앞에는 워즈워스의 시 두 편이 인용돼 있다. 같은 꽃을 보고 누구는 “그에게 노란 앵초였네, 그뿐이었네"로 끝나고, 누구는 “나부끼는 초라한 꽃이 내게 안겨 주는 것은 눈물로 담아 낼 수 없을 만큼 심오한 생각거리"라고 쓴다. 꽃은 같은데 사람이 다르다. “아름다움은 보는 이의 눈에 달려 있다"는 말을 이렇게 신학적으로 뒤집어 쓰는 솜씨가 좋았다.

여기서 그가 말하는 행복은 형편이 잘 풀릴 때 생기는 만족감과 다르다. 소유의 양이 아니라 존재의 뿌리에 달려 있다. 무엇을 가졌느냐가 아니라 어디에 심겼느냐가 중요하다. 성공, 인정, 건강과 관계는 귀한 선물이지만 삶의 근원이 될 수는 없다. 그것들은 날씨처럼 변하기 때문이다. 변하는 것을 뿌리로 삼으면 상황이 흔들릴 때 나까지 뽑혀 나간다.

즐거워하여, 주야로

그렇다고 복 있는 삶이 금지와 회피로만 이루어지는 건 아니다.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여기서 중요한 단어는 ‘의무’가 아니라 ‘즐거워하여’다. 읽지 않으면 벌을 받을까 두려워 억지로 성경을 펼치는 것과, 그 말씀에서 생명을 발견해 자꾸 되돌아가는 것은 전혀 다르다. 로이드 존스는 성경 읽기를 종교적 실적이 아니라 마음의 식사로 이해한다. 묵상 역시 낯선 신비 체험이 아니다. 들은 말씀을 생각하고, 기억하고, 삶의 판단 기준으로 삼는 일이다.

다만 ‘즐거움’을 감정적인 흥분으로 오해하면 안 된다. 성경을 읽어도 아무 감동이 없을 때가 있다. 어떤 구절은 위로보다 불편함을 주고, 내 욕망을 지지하기보다 잘라 낸다. 그럼에도 말씀 곁에 머무는 것은 즉각적인 기분보다 그 말씀이 진실하다는 사실을 신뢰하기 때문이다. 즐거움은 매번 달콤한 감정을 느끼는 상태라기보다, 결국 내가 돌아갈 곳이 여기임을 아는 깊은 애착에 가깝다.

뿌리로 뭔가를 잡고 있는 나무

책의 중심에는 시편 1편의 가장 아름다운 이미지가 있다.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95쪽의 이 문단이 좋았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냥 괜찮은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냥 착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냥 즐겁고 행복한 감정을 느끼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대신 그들은 뿌리가 있는 나무 같아서, 뭔가에 붙들려 있고 뭔가에 고정되어 있고 뿌리로 뭔가를 잡고 있다고 한다. 신앙을 기분이나 인성으로 환원하지 않으려는 고집이 여기 있다.

인상 깊은 건 나무가 스스로 시냇가로 걸어간 게 아니라 그곳에 ‘심겼다’는 사실이다. 신앙은 자신을 완벽하게 관리해 복 있는 사람이 되는 자기계발 프로젝트가 아니다. 하나님이 생명의 근원 곁으로 옮겨 심으시는 은혜가 먼저다. 그렇다고 은혜로 심겼다는 사실이 수동적인 삶을 뜻하지도 않는다. 나무는 물을 받아 열매를 맺는다. 은혜는 행동을 없애는 게 아니라 행동의 뿌리를 바꾼다.

또 하나 중요한 표현은 ‘철을 따라’다. 건강한 나무도 사계절 내내 열매를 달고 있지는 않다. 겉보기에 아무 변화가 없는 겨울도 생명의 일부다. 우리는 짧은 시간에 가시적인 결과가 나타나지 않으면 실패했다고 생각한다. 기도한 지 며칠 만에 마음이 평안해지기를 바라고, 성경을 읽기 시작하자마자 성품이 바뀌기를 기대한다. 하지만 하나님이 기르시는 삶에는 계절이 있다. 열매가 보이지 않는 시간에도 뿌리는 더 깊이 내려갈 수 있다.

반대편에는 겨가 있다.

“악인들은 그렇지 아니함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겨는 나무보다 가벼워서 자유로워 보인다. 어디에도 뿌리내리지 않고 바람을 따라 움직인다. 그러나 방향을 스스로 결정하지 못한다. 로이드 존스가 보는 하나님 없는 인간의 비극도 여기에 있다. 자기 뜻대로 산다고 생각하지만 여론, 욕망, 유행과 죽음의 바람에 끌려간다. 뿌리 없는 자유는 결국 더 강한 힘에 휘둘리는 상태가 된다.

끝까지 계산에 넣은 사람

마지막 설교에서 그는 시편 1편의 논점을 이렇게 정리한다. 참으로 복 있고 행복한 사람은 모든 것을 고려하고 모든 것을 준비한 사람이라고. 끝, 죽음, 그 너머에 있는 것까지 포함해서.

“인생은 쪼갤 수 없습니다. 조각조각 나눌 수 없습니다.” 이 문장이 오래 남았다. 우리는 인생을 자꾸 구간별로 관리한다. 일하는 나, 쉬는 나, 신앙생활 하는 나를 따로 두고 각 구간의 만족도를 따로 계산한다. 그런데 그는 인생이 흘러가는 강물처럼 하나로 움직인다고 말한다. 그러니 정말 복을 받고 싶다면 시작뿐 아니라 끝도 숙고해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가장 감명 깊었던 점도 여기 걸려 있다. 로이드 존스는 행복을 직접 추구해서 얻는 감정으로 보지 않는다. 행복만을 목표로 삼으면 모든 사람과 사건을 ‘나를 만족시키는가’라는 기준으로 평가하게 된다. 심지어 하나님도 내 기분을 관리해 주는 수단으로 만든다. 반대로 하나님을 알고 그분의 말씀 안에 뿌리내릴 때 행복은 붙잡아야 할 목표가 아니라 따라오는 열매가 된다. 행복을 잊으라는 말이 아니라, 행복보다 더 큰 대상을 사랑하라는 말이다.

두 길로만 나눌 수 있을까

그러나 의문도 남는다.

“의인들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들의 길은 망하리로다.”

이 선명한 구도는 결단을 촉구하는 힘이 있지만 현실의 복잡성을 충분히 설명하지는 못한다. 신실한 사람도 우울증과 가난, 폭력과 실패를 겪는다. 악한 선택을 하면서도 사회적으로 번영하는 사람이 있다. 따라서 ‘복 있는 사람’을 모든 일이 잘되는 사람으로 읽으면 고통받는 이에게 잔인한 신앙이 된다. 시편이 말하는 복은 고난의 면제가 아니라,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께 알려지고 붙들린 삶에 더 가깝다고 생각한다.

로이드 존스의 해석은 개인의 영적 선택에 집중하는 만큼 구조적 악을 충분히 다루지 못한다는 한계도 있다. 누군가의 불안이 반드시 하나님을 믿지 않아서 생긴 건 아니다. 불안정 노동, 돌봄의 부담, 차별과 질병이 실제 원인일 수 있다. 그 사람에게 “말씀만 묵상하면 된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 시냇가에 심긴 사람이라면 자신의 평안만 누리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이 생존할 물길을 빼앗는 구조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성경적 행복은 사적인 안정에 머물지 않고 정의와 자비의 열매를 맺어야 한다.

일주일 동안 해본 것

책을 읽은 뒤 일주일 동안 아침에 휴대전화를 보기 전에 시편 1편을 읽어 봤다. 특별한 체험은 없었다. 다만 하루의 첫 목소리가 뉴스와 광고, 타인의 성공이 아니라 말씀이 되자 내가 무엇에 쉽게 끌려가는지가 조금 더 선명해졌다.

밤에는 “오늘 무엇을 이루었나?” 대신 “오늘 나는 어디에 오래 머물렀나?“를 적었다. 불안을 반복해서 들여다본 날도 있었고, 한 사람의 말을 충분히 들어 준 날도 있었다. 행복을 측정하려 하지 않고 뿌리의 방향을 살피니 하루를 보는 방식이 달라졌다.

함께 읽으면 좋은 책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과 비교하면 두 책 모두 세상이 성공이라고 부르는 삶에서 물러나 삶의 근원을 묻는다. 그러나 소로가 단순한 생활과 자연 속 자립에서 자유를 찾는다면, 로이드 존스는 인간이 스스로 생명의 근원이 될 수 없다고 말한다.

반대로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와 함께 읽으면 의미 있는 접점이 보인다. 프랭클은 행복을 직접 목표로 삼을수록 놓치게 된다고 말하고, 로이드 존스도 행복보다 진리와 하나님을 먼저 구하라고 한다. 다만 프랭클이 의미를 향한 인간의 책임을 강조한다면, 로이드 존스는 그 책임을 가능하게 하는 하나님의 은혜를 더 앞세운다.

남는 질문

『복 있는 사람』은 성공했는데도 삶이 메마른 사람, 형편이 나아져야만 행복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 성경 읽기가 의무적인 체크리스트가 된 사람에게 권하고 싶다. 문장은 설교답게 단호하고 같은 주제를 반복하기도 하지만, 그 반복 속에서 질문이 점점 깊어진다.

나는 지금 무엇을 따라가고 있는가. 어디에 앉아 있는가. 무엇을 즐거워하는가. 그리고 어디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가.

결국 복 있는 사람은 바람이 불지 않는 인생을 사는 사람이 아니다. 바람이 불어도 날아가지 않을 뿌리를 가진 사람이다. 행복은 모든 조건을 통제하는 능력이 아니라, 통제할 수 없는 삶 속에서도 생명의 근원 곁에 심겨 있다는 믿음에서 시작된다. 이 책을 덮고 남는 것은 “행복해져야 한다"는 조급함보다 더 조용하고 본질적인 질문이다.

나는 오늘 어느 길을 걷고 있는가.

총평

좋았던 점

  • 시편 1편 한 편으로 네 편의 설교를 끌어내는 본문 장악력이 놀랍다
  • “기분이 좋아지는 약"이 아니라 진단부터 내리는 의사의 태도로 행복을 다룬다
  • 짧은 강해집이라 부담 없이 읽히는데, 남는 질문은 오래간다

아쉬운 점

  • 개인의 영적 선택에 집중하느라 구조적인 고통은 거의 다루지 않는다
  • 의인과 악인, 두 길로 나누는 구도가 현실의 회색지대를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다
  • 설교문 특유의 반복이 있어 속도감을 기대하면 답답할 수 있다

이런 분께 권합니다

  • 성공했는데도 삶이 이상하게 메마른 사람
  • 형편이 나아져야만 행복해질 수 있다고 믿는 사람
  • 성경 읽기가 의무 체크리스트가 되어 버린 사람
  • 시편 1편을 한 번쯤 제대로 파보고 싶은 사람

한 줄로 남기면

“복 있는 사람은 바람이 불지 않는 인생을 사는 사람이 아니라, 바람이 불어도 날아가지 않을 뿌리를 가진 사람이다.”

자주 묻는 질문

『복 있는 사람』은 어떤 책인가?
마틴 로이드 존스가 시편 1편을 네 편의 설교로 풀어낸 짧은 강해집이다. 원제는 True Happiness이고 국내에는 홍종락 번역으로 두란노에서 나왔다.
신앙이 없어도 읽을 만한가?
행복을 감정이 아니라 뿌리의 문제로 보는 관점 자체는 충분히 읽힌다. 다만 결론이 명확하게 기독교 신앙으로 향하므로, 중립적인 행복론을 기대하면 맞지 않는다.
로이드 존스 입문서로 적당한가?
적당하다. 분량이 짧고 본문이 시편 1편 하나라 그의 강해 방식을 맛보기에 좋다. 『산상설교』나 로마서 강해로 바로 들어가는 것보다 훨씬 가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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