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섬기는 사람이 리더가 된다 - 서번트 리더십 원전

로버트 K. 그린리프 『서번트 리더십 원전』을 읽고 정리한 서평. 섬김을 리더십 기술이 아니라 동기의 문제로 보는 책, '섬김을 받은 사람이 성장했는가'라는 평가 기준, 조종과 관리가 같은 어원에서 나왔다는 지적, 그리고 사람을 키우는 일이 왜 늘 손해처럼 느껴지는지 적었다.

kakaopress 발행 읽는 시간 약 10분

책 정보

서번트 리더십 원전 표지

서번트 리더십 원전

「SERVANT LEADERSHIP」 출간 25주년 기념판

Servant Leadership: A Journey into the Nature of Legitimate Power and Greatness

저자
로버트 K. 그린리프
옮긴이
강주헌 옮김
출판사
참솔
읽은 날
2026년 9월 18일

“따르는 사람의 수가 아니라, 곁에서 자란 사람의 키로 리더의 크기가 드러난다.”

한 줄 평

가볍게 여겼던 단어

『서번트 리더십』을 펼치기 전까지 나는 이 말을 꽤 얄팍하게 알고 있었다. 팀원에게 다정하고, 목소리를 높이지 않고, 남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 주는 상사. 대충 그 정도였다. 사람 좋은 관리자를 부르는 예쁜 이름쯤으로 여겼던 것 같다.

로버트 K. 그린리프의 원전을 덮고 나니 완전히 다른 물건이었다. 이건 처세의 요령이 아니라 “사람은 애초에 왜 다른 사람을 이끄는가"라는 질문에 가깝다.

그린리프는 AT&T에서 오래 일하며 조직과 경영을 몸으로 겪은 뒤에야 자기 생각을 정리한 사람이다. 1970년에 쓴 「The Servant as Leader」가 출발점이었고, 거기서 기업과 대학, 재단, 교회까지 논의를 넓혀 갔다. 그래서 이 책은 경영서라기보다 경영학과 윤리학과 인간학이 섞인 잡종에 가깝다. 유대-기독교 전통의 영향을 숨기지 않으면서도 특정 종교의 언어로 가두지 않은 점이 인상 깊었다.

이 글의 쪽수는 참솔에서 나온 출간 25주년 기념판(강주헌 옮김) 기준이다. 인용 블록이나 따옴표로 표시하고 쪽수를 붙인 문장은 이 판본의 원문 그대로이고, 그 밖의 내용 소개는 내가 풀어 쓴 요약이다.

네 문장이면 충분하다

핵심은 놀랄 만큼 간단하다. 제1장 「지도자로서의 서번트」의 논지를 내 말로 줄이면 네 문장이다.

  1. 서번트 리더는 먼저 섬기는 사람이다.
  2. 그 섬김은 리더 자리에 오르기 위한 계산이 아니라, 섬기고 싶은 자연스러운 마음에서 시작된다.
  3. 그래서 리더를 재는 기준은 섬김을 받은 사람들이 사람으로서 성장하느냐다.
  4. 그리고 가장 소외된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느냐다.

원문 인용이 아니라 요약이다. 이 가운데 3과 4에 해당하는 대목을 그린리프는 ‘가장 좋은 실험법’이라며 질문의 형태로 적어 두었다.

섬김받는 사람들이 점점 인간다워지는가? 섬김받는 동안 더 건강해지고 더 지혜로워지고 더 자유로워지면서 그들도 서번트로 변하려고 하는가? 그리고 사회에서 가장 홀대받는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그들은 어떤 혜택을 누리는가, 적어도 더 이상 빼앗기지는 않았는가?

— 33쪽

솔직히 이 네 문장만 손에 쥐고 있어도 그린리프가 하려던 말의 절반 이상은 잡힌다.

세 번째 질문이 특히 아팠다. 우리는 보통 리더를 성과로 잰다. 매출을 얼마나 끌어올렸는지, 프로젝트를 제때 냈는지, 조직을 얼마나 키웠는지. 그린리프는 자를 아예 바꿔 버린다. 당신 밑에서 일한 사람이 전보다 나은 사람이 되었는가.

사람을 맡아 본 적 있다면 이 물음이 얼마나 무거운지 안다. 일정이 조여 오면 사람보다 마감이 먼저 보인다. 숫자에 쫓기면 성장 가능성이 큰 사람 대신 지금 당장 결과를 뽑아 주는 사람에게 중요한 일을 몰아주게 된다. 아직 서툰 후배를 기다려 주는 시간이 순수한 낭비처럼 느껴지는 날도 있었다. 나도 “팀을 위해서"라고 말하면서 실은 실적을 위해 사람을 배치하던 순간들이 있었다. 그때는 그게 프로다운 판단인 줄 알았다.

책의 기준을 대면 질문이 달라진다. 프로젝트가 성공했느냐만 묻는 게 아니라, 그 프로젝트를 통과한 사람이 더 능동적이고 분별 있고 책임질 줄 아는 사람이 되었는지를 봐야 한다. 좋은 리더는 잘 따르는 부하를 많이 거느린 사람이 아니라, 자기 없이도 판단하고 움직일 사람을 길러 내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조종과 관리가 같은 뿌리에서 나왔다는 말

기업을 다룬 제2장에서 눈이 멈춘 대목이 있다. 1970년 스위스 취리히의 한 연구소 콘퍼런스에서 발표했다는 글의 첫 문단이다.

조종(manipulation)과 관리(management)란 두 단어는 같은 어원, 즉 손을 뜻하는 「마누스(manus)」에서 파생하였다. 이 두 단어는 다른 사람의 운명을 만든다는 뜻을 함축하고 있다. 하지만 「조종」은 은밀하게 진행한다는 점에서 옳지 못한 것으로 인식되어온 반면, 「관리」는 정당한 것으로 여겨졌다.

— 87쪽

읽다가 잠깐 멈췄다. 내가 회의에서 쓰는 “얼라인”, “온보딩”, “리소스 배분” 같은 말들은 어느 쪽 손인가. 같은 행동을 두고 관리라 부를지 조종이라 부를지는 결국 손끝의 방향에 달렸다는 얘기 아닌가. 같은 쪽 첫머리에서 저자는 “기업 자체를 사랑할 수는 없다”(87쪽)고 쓴다. 사랑해야 할 것은 기업이라는 울타리 안에 모인 사람들이고, 그들이 모여 이룬 조직이 곧 기업이라는 요지다. 회사에 충성하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느끼던 미묘한 거북함의 정체를 여기서 봤다.

착한 리더와는 다른 이야기

그래서 서번트 리더십의 요점은 ‘좋은 사람 되기’가 아니다. 여기를 잘못 짚으면 조직이 망가진다. 구성원이 원하는 걸 다 들어주는 사람은 섬기는 리더가 아니다. 껄끄러운 말을 삼키고 갈등을 피해 다니는 태도도 섬김이 아니다. 사람을 키우려면 때로 서늘한 피드백이 필요하고, 책임을 물어야 하며, 누구도 좋아하지 않을 결정을 혼자 짊어져야 한다.

진짜 갈림길은 결정의 동기다. 사람을 써서 내가 올라가려는가, 아니면 내게 주어진 권한으로 사람과 공동체를 키우려는가. 말로 쓰면 뻔한데, 실제로 자기한테 들이대 보면 꽤 날카롭다.

여유로움이라는 오래된 단어

관료 조직을 다룬 제5장에서 저자는 ‘여유로움’이라는 단어를 옛 뜻, 즉 “조용히 고통을 참고 견디는 능력”(173쪽)이라는 뜻으로 쓴다고 밝힌다. 지금까지 한 번도 고통을 겪어 보지 못했다면 언젠가 겪을 날이 온다는 말, 그리고 “젊어서 죽거나, 아니면 피눈물나는 고통을 겪어보아라”(173쪽)라는 포르투갈 속담이 나란히 놓여 있다.

이어서 로버트 프로스트의 짧은 시가 인용된다. 잠을 방해받으면서도 어둠 속에서 빛을 찾는 소녀, 그리고 그 두려운 어둠을 앞질러 가지려는 화자. 저자는 이 시가 “고통을 앞에 둔 평온함, 곧 여유로움"을 그렸다고 읽고, “고통으로 잠에서 깨어 있기보다는 차라리 고통에서 뭔가를 배우려는 욕망”(173쪽)이라고 풀이한다.

리더십 책 한가운데서 시 한 편을 만난 게 반가웠다. 사람을 기다려 주는 일은 결국 견디는 일이라는 것. 기다림이 답답하게 느껴질 때마다 이 단어를 떠올리게 됐다.

조직도 섬길 수 있는가

그린리프는 개인을 넘어 기관 자체가 서번트가 되어야 한다고 밀고 나간다. 종교기관을 다룬 제8장에서는 더 직설적이다. 교회는 소외당한 사람을 치유하고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섬기는 데 존재 이유가 있는데,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교회가 제대로 섬기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고 적는다. 그리고 이렇게 잇는다. “교회는 다른 기관의 표본이 되는 것으로 서번트 리더가 될 수 있다."(275쪽)

같은 쪽에서 예언의 목소리에 관한 대목이 이어지는데, 시대의 성패를 가르는 변수는 예언자의 재능이 아니라 그것을 듣는 사람들의 수용적 태도라는 이야기다. “그의 메시지가 처음부터 무시되고 일축당한다면 그의 재능도 시들어버리기 십상이다."(275쪽) 좋은 말이 없어서 조직이 나빠지는 게 아니라, 좋은 말이 설 자리가 없어서 나빠진다는 뜻으로 읽혔다.

나는 이 대목이 요즘 더 무겁게 느껴진다. 회사가 복지 제도 하나 만들었다고 섬기는 조직이 되지 않는다. 교회가 봉사 행사를 자주 연다고 섬기는 공동체가 되는 것도 아니다. 진짜 물음은 그 조직과 엮인 사람들이 더 건강하고 자유롭고 지혜로워지고 있는가다.

여기서 예수의 리더십이 자연스럽게 겹쳤다. 그린리프의 이론을 곧장 기독교 리더십과 포개 놓을 필요는 없다. 다만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마태복음 20:26, 개역개정)라는 말씀과 이 책 사이에는 분명한 공명이 있다. 세상은 위로 올라가야 영향력이 생긴다고 믿지만, 복음은 낮아지는 자리에서 참된 권위가 자란다고 말한다.

예고 없이 기숙사 문을 두드린 총장

마지막 제9장에는 본받을 만한 인물들이 나온다. 그중 프렉시라는 대학 총장 이야기가 오래 남았다. 저자는 이것을 “프렉시의 열린 가슴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일화”(345쪽)라며 꺼낸다. 총장은 일요일이면 예고 없이 기숙사를 찾아가곤 했는데, 하필 처음 문을 두드린 방에서는 크랩 게임, 곧 주사위 노름이 벌어지고 있었다. 여섯 명이 판을 둘러앉아 있었고 열 명 남짓이 구경 중이었다. 그리고 그 방 구석 책상 위에 앉아 있던 사람이 학생 시절의 저자 자신이었다.

같은 페이지 앞부분에는 유능한 사람이 세상의 먼지를 뒤집어쓸까 봐 굴속으로 숨어 버린다면 어쩔 것이냐는 물음이 있다. 다른 사람의 실수와 타협할 수 없다는 고결한 이상만으로 세상을 멀리한다면, 차라리 현실을 알고 때로는 타협하면서 기관 안에서 제 몫을 맡아 방향을 틀어 보려는 쪽이 낫지 않겠느냐고 저자는 묻는다. 그 옆에는 어느 저명한 화학자의 말도 실려 있다. “뭇 사람들에게 화학을 그런대로 이해시키려면 진실을 절반만 이야기해야 합니다!"(345쪽) 교육의 딜레마를 이보다 정확히 옮기기도 어렵다.

총장이 노름판이 벌어진 방의 문을 두드리고, 그 구석에 훗날 서번트 리더십을 말하게 될 학생이 앉아 있는 장면. 저자가 리더십을 이론이 아니라 한 사람에게서 직접 겪은 일로 배웠다는 사실이, 내가 아는 어떤 리더십 이론보다 설득력 있었다.

5분이면 끝날 일을 30분 기다리기

생활에서도 시험해 봤다. 누가 문제를 들고 오면 답을 바로 주는 대신 “너는 어떻게 생각해?“를 먼저 묻는 것이다.

처음엔 속이 터진다. 내가 결정하면 5분이면 끝날 사안인데, 상대가 생각을 정리할 때까지 기다리면 30분이 날아간다. 그런데 몇 달 반복하니 흐름이 바뀌었다. 질문만 들고 오던 사람이 어느 날부터 자기 판단을 들고 오기 시작했다. “이렇게 하려는데 괜찮을까요?“라는 문장을 처음 들었을 때, 날아간 30분들이 한꺼번에 회수되는 기분이었다.

여기에 그린리프의 통찰이 있다. 리더십의 목적은 나에게 기대는 사람을 늘리는 게 아니라, 점점 더 자유롭고 책임질 줄 아는 사람을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은 불친절하다

사이먼 시넥이나 존 맥스웰 같은 요즘 책과는 결이 다르다. 현대 리더십 서적은 실행 순서와 대화 기술을 깔끔하게 정리해 준다. 그린리프는 답답할 만큼 천천히 밑바닥을 판다. 그래서 읽기는 원전이 훨씬 고되다. 문장은 압축적이고, 당장 내일 회의에서 써먹을 체크리스트 같은 건 거의 없다.

그런데 그게 이 책의 힘이기도 하다. 방법론은 시대가 바뀌면 낡지만, 사람에 대한 물음은 쉽게 낡지 않는다. KPI와 생산성과 효율이라는 단어가 하루에도 몇 번씩 오가는 지금은 더 그렇다. 조직이 사람을 위해 있는지 사람이 조직을 위해 있는지, 그 경계가 흐려지는 속도가 너무 빠르다.

남는 질문 하나

읽는 내내 마음에 걸린 게 있다.

내가 리더라면, 사람들이 나를 필요로 하게 만드는 것이 성공일까. 아니면 언젠가 나를 필요로 하지 않게 만드는 것이 성공일까.

예전에는 앞쪽이 실력이라고 여겼던 것 같다. 없으면 안 되는 사람. 지금은 뒤쪽이 훨씬 높은 수준의 지도력이라고 느낀다. 사람이 자라면 결국 내 통제를 벗어난다. 자기 생각이 생기고, 반대 의견을 내고, 어떤 영역에서는 나보다 잘하게 된다. 그 순간을 서운함이 아니라 기쁨으로 맞을 수 있느냐가 갈림길이다.

그래서 이 책은 팀장이나 경영자만의 책이 아니다. 부모에게도, 교사에게도, 목회자에게도 필요하다. 사람을 맡거나 가르치거나 돌보는 자리에 있다면 한 번쯤 통과해 볼 만하다. 특히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나를 따르게 할까"를 오래 궁리해 온 사람에게 권하고 싶다. 그린리프가 그 물음을 통째로 뒤집어 버리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나를 따르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가 아니라,

“나와 함께한 사람들이 어떤 사람이 되어 가고 있는가.”

책을 덮고도 끝내 남은 건 이 문장이었다. 리더의 크기는 따르는 사람의 수가 아니라 곁에서 자란 사람의 키로 드러나는지도 모른다. 『서번트 리더십』은 리더가 되는 기술을 알려 주는 책이라기보다, 리더가 되기 전에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지를 묻는 책이다. 반세기 전에 쓰인 글이 아직 숨 쉬고 있는 이유도 거기에 있을 것이다.

총평

좋았던 점

  • “먼저 섬기는 사람"이라는 한 문장으로 리더십의 출발점 자체를 바꿔 놓는다
  • 성과가 아니라 “섬김받는 사람이 더 자유롭고 지혜로워졌는가“를 평가 기준으로 내민다
  • 조종(manipulation)과 관리(management)가 같은 어원에서 나왔다는 지적 — 내가 쓰는 말이 어느 쪽인지 되묻게 된다
  • 개인만이 아니라 기업·학교·교회 같은 기관 자체가 섬김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고 밀어붙인다

아쉬운 점

  • 당장 써먹을 방법론을 기대하면 답답하다. ‘리더의 7가지 습관’ 같은 목록이 거의 없다
  • 1970년대 미국 조직과 대학을 배경으로 한 사례가 많아, 한국 직장의 결과 바로 포개지지 않는 대목이 있다
  • 문장이 압축적이고 에세이 묶음에 가까워 앞뒤가 매끄럽게 이어지지 않는 구간이 있다

이런 분께 권합니다

  • 처음 팀을 맡고 나서 ‘사람을 어떻게 다뤄야 하나’ 검색하다 지친 사람
  • 성과는 나쁘지 않은데 팀원이 자꾸 떠나는 이유가 궁금한 중간관리자
  • 아이나 학생, 성도를 맡아 기르는 자리에 있는 사람
  •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나를 따를까"라는 질문에 오래 머물러 있는 사람

한 줄로 남기면

“따르는 사람의 수가 아니라, 곁에서 자란 사람의 키로 리더의 크기가 드러난다.”

자주 묻는 질문

서번트 리더십은 결국 착한 리더가 되라는 말인가?
아니다. 그린리프는 권한을 없애라고 하지 않는다. 냉정한 피드백도, 책임을 묻는 일도, 아픈 결정도 리더의 몫이다. 달라지는 건 그 힘을 쓰는 목적이다.
위기 상황이나 군대 같은 조직에서도 작동하나?
즉각적인 명령이 필요한 순간까지 부정하는 책은 아니다. 다만 평시에 사람을 키워 둔 조직이 위기에서 더 잘 버틴다는 쪽에 가깝다.
현대 리더십 책과 무엇이 다른가?
실행 기법 대신 동기를 묻는다. 읽기는 더 불친절하지만, 유행을 덜 탄다.
번역본은 읽을 만한가?
참솔에서 나온 출간 25주년 기념판을 읽었다. 문장은 압축적이라 속도는 안 나지만, 원전을 축약 없이 만난다는 점에서 값이 있다.
공유하기 X(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