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은 완벽한 사람을 만나는 일이 아니라, 함께 새로워지는 일 — 팀 켈러 『결혼을 말하다』

발행 읽는 시간 약 11분

이혼이 넘쳐나는 시대다. 조금 힘들어지면 헤어지고, 감정이 상하면 헤어진다.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결혼이란 원래 어떤 것이었을까 생각하곤 했다. 그러던 차에 집어 든 책이 이 책이었다.

팀 켈러의 『팀 켈러, 결혼을 말하다』. 원제는 The Meaning of Marriage로, 2011년 미국에서 나온 책을 한국에서는 2014년 두란노에서 펴냈다. 표지 부제에는 “현대인의 꼬여버린 결혼의 실타래를 풀다"라고 적혀 있다. 뉴욕 리디머 장로교회에서 목회한 켈러가 중심이 되어 썼지만, 아내 캐시 켈러의 경험과 시선도 깊이 들어와 있다. 결혼 생활의 요령을 알려주는 실용서라기보다, 에베소서 5장을 축으로 결혼의 신학적 의미를 따라가는 책이다. 미혼에게도 기혼에게도 읽히고 싶다는 태도가 분명한 것도 특징이라고 생각한다.

결혼에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한 시대

요즘 사람들은 결혼을 두 극단 사이에서 보는 것 같다. 한쪽에서는 결혼만 하면 외로움이 사라지고 행복이 완성될 것처럼 말한다. 다른 쪽에서는 자유를 빼앗고 손해만 늘리는 낡은 제도로 취급한다. 켈러는 그 둘 다 “결혼에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한 결과"라고 본다. 결혼을 구원처럼 기대하면 배우자에게 인간이 감당할 수 없는 역할을 지우게 되고, 그 기대가 무너지면 제도 자체를 실패로 판정해버린다.

이 시선이 어디서 왔는지를 책은 역사까지 거슬러 올라가 설명한다. 밑줄을 그으며 읽은 게 이 페이지였다.

계몽주의가 퍼지기 전의 문화는 주어진 사회적 역할을 받아들이고 성실히 감당하는 것, 곧 의무 안에서 의미를 찾으라고 가르쳤다. 그것이 바뀌어, 자신에게 가장 만족스러운 삶을 선택할 자유와 그 결과 안에서 인생의 의미를 찾게 되었다. 그렇게 되면 결혼은 하나님이나 사회를 향한 책임이 아니라, 당사자끼리 개인적인 만족을 위해 맺은 계약이 된다. 공동체가 자기에게 유익하다고 판단하는 한에서만 그 관계를 이어간다는 이야기다. 페이지 여백에 내가 직접 동그라미를 쳐둔 ‘하지만’이라는 글자가, 읽던 당시의 걸림을 그대로 남기고 있어서 나중에 다시 보고 조금 웃었다.

그 연장선에 있는 현실을 켈러는 가차 없이 늘어놓는다.

인용된 조사의 결론이 통렬하다. 동거는 남자에게 집 안에서 안정적인 관계의 이점을 받으면서, 동시에 더 자유롭게 ‘더 나은 상대’를 계속 찾을 여유를 준다는 대목이다. 아이를 가질 수 있는 시기가 지나기 전이라는 압박을 여성 파트너가 느끼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그건 여자 사정"이라고 말해버리는 남자의 말도 나온다. 뉴욕 타임스 칼럼에서, 결혼한 상태로 성적으로 자유롭게 처신한 정치인들의 이름이 줄줄이 나오는 대목도 있다. 자연스러운 본능을 바꾸고, 격정을 억제하고, 개인적인 욕구를 부인하는 법을 배우며, 타인을 위해 섬긴다는 전통적인 결혼의 목적에 하나같이 반기를 든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소비자가 아니라, 언약

이 책의 중심은 여기에 있다. 결혼은 ‘소비자의 관계’가 아니라 ‘언약의 관계’라는 한 가지.

장의 첫머리에 이렇게 있다. 성경은 현대 문화와는 전혀 다르게, 자기가 아니라 상대의 유익을 위해 희생하고 헌신하는 것이 결혼의 핵심이라고 가르친다. 사랑은 감정보다 더 근원적이고 근본적인 행동이라고. 다만 켈러는 거기서 전통 사회가 빠지기 쉬운 반대편의 오류에도 주의를 돌린다. 결혼을 가족과 부족과 사회에 대한 의무를 다하는 사회적 절차로만 보는 시선이다. 전통 사회에서는 혈연에 최고의 가치를 두었으니 결혼이 가문의 이익을 위한 거래처럼 보이기 쉬웠다.

그리고 이어지는 한 대목이 인상적이었다. 공급자가 구매자에게 적절한 대가를 받고 필요를 채워주는 관계는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진 적이 없다. 누군가 더 나은 서비스를, 혹은 같은 서비스를 더 싸게 제공하면 구매자에게는 기존의 거래를 유지할 의무가 없다. 그런 관계에서는 각자의 필요가 관계보다 중요하다는 뜻이 된다.

지금의 결혼관에서 가장 아픈 지점을 아마 이 비유가 정확히 짚고 있다. 상대가 나를 채워주는 한에서만 이어지는 관계. 채워주지 못하게 된 순간 이어갈 이유가 사라지는 관계. 그에 비해 언약의 관계는 각자의 일차적인 필요보다 관계 자체를 위에 둔다.

그렇다고 켈러가 사랑 없는 결혼을 그냥 참으라고 말하는 건 아니다. 그가 강조하는 건 사랑이 감정에서 시작될 수는 있어도 감정만으로는 지속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사랑해서 행동할 때도 있고, 사랑하는 행동을 계속하다 보니 식었던 감정이 다시 돌아올 때도 있다.

“사랑은 감정인 동시에 행동이다.”

감정만으로 사랑을 이해하면 마음이 식는 순간 관계의 근거까지 사라진다. 그렇다고 행동만 남으면 사랑은 차가운 의무가 된다. 켈러는 어느 한쪽을 고르지 않는다. 감정을 정직하게 인정하면서도, 감정이 사랑의 최종 결정권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무엇을 포기하느냐가 아니라, 누가 먼저 포기했느냐

‘잘못된 선택은 없다’는 절에서 켈러는 정면으로 질문을 세운다. 자기 관심을 포기하고 가족의 유익을 추구하는 것이 결혼의 목적인가, 아니면 결혼을 자아실현의 발판으로 삼아야 하는가.

답은 성취와 희생 중 어느 한쪽을 고르는 것이 아니라, 상호 희생을 통해 상호 성취하는 길로 가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뒤에 이어지는 문장에 밑줄을 그어두었다. 자기를 쳐서 그리스도를 따르는 일은 무엇에도 비할 수 없이 안전한 일이다. 주님이 이미 지옥까지 갔다가 다시 돌아오셨기 때문이다. 그걸 기억하면, 포기하고 따르다가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는 게 아닐까 하는 두려움에서 놓여난다.

여기가 이 책의 가장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희생하라"는 도덕적 명령만이라면 솔직히 버겁다. 그런데 켈러의 힘점은 다른 데 있다. 내가 먼저 조건 없는 은혜를 받은 사람이라는 걸 아는 것. 거기서 비로소 상대에게도 은혜를 내밀 힘이 생긴다. 복음은 따라야 할 모범일 뿐 아니라, 실제로 사랑할 수 있게 하는 동력이다.

‘주님을 결혼 생활의 중심에 두라’는 절도 같은 흐름이다. 바울은 복음을 모르고서는 부부 관계를 제대로 파악할 수 없다고까지 단언했다고 켈러는 쓴다. 구원은 새로운 출발이고, 이전 것은 지나갔으며 새것이 되었다. 복음을 통해 우리는 신랑 되신 예수와 결혼의 관계를 맺는다. 곧 그리스도께 인생의 주도권을 넘긴다는 뜻이다.

그다음에 이어지는 에베소서 5장 28절 이야기가 뜻밖에 생활적이고 재미있었다. 남편은 아내를 자기 몸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구절에서, 사도가 먼저 건강이 기본이라고 짚는다는 식으로 읽는다. 큰돈을 버는 것이 행복의 지름길이라고 믿고 몸보다 일을 앞세우면 어떻게 되는가. 운동할 틈도 없고,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식사조차 챙기지 못한 채 엄청난 스트레스에 노출된다. 그렇게 해서 큰돈은 벌지 몰라도, 심장마비라도 오면 쌓아 올린 부를 누려보지도 못하고 인생을 끝내게 된다. ‘행복’을 건강보다 앞세우면 실제로는 전혀 행복해지지 못한다. 결혼 생활도 배우자와의 관계를 최우선에 두고, 부모와 자녀, 직장과 취미 같은 ‘선하고 좋은 것들’, 곧 ‘가짜 배우자’에게 한눈팔지 않을 때 비로소 정상적으로 움직인다는 것이다.

배우자는 완성품이 아니다

“배우자는 완성품이 아니라, 하나님이 만들어가고 계신 사람이다.”

이 한 문장이 가장 오래 남았다. 우리는 대개 지금 눈앞에 보이는 모습으로 상대를 평가한다. 그런데 결혼은 현재의 배우자만 바라보는 일이 아니라, 하나님 안에서 그 사람이 앞으로 되어갈 모습까지 사랑하는 일이라고 한다. 결혼은 서로의 결함이 드러나는 자리인 동시에, 그 결함이 인격으로 깎여나가는 작업장이기도 하다.

‘배우자가 영광스러운 존재가 되도록 도우라’는 절에 그것이 분명하게 적혀 있다. 결혼은 한 사람의 실상에 대한 진실을 고스란히 드러내 보이는 독특한 힘을 지니고 있다. 동시에 사랑에 기대어 과거를 청산하고 자아상을 치유하는 특별한 능력도 지니고 있다. 그리고 또 하나,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통해 베푸신 놀라운 은혜를 깨닫게 하는 신비한 힘도 있다. 바울이 에베소서 5장에서, 예수께서 큰 대가를 치르고 우리를 아름답게 해주셨으니 우리도 다른 사람에게 그렇게 해야 한다고 가르치는 건 그 때문이다.

그 앞 페이지에는 이런 이야기도 있었다. 우리의 죄가 예수께 지운 상처는 배우자가 주는 상처와 비교조차 되지 않는다. 자기를 십자가에 못 박으려는 사람들의 죄까지 용서하시는 예수를 올려다보면, 그 사랑이 너무 압도적이어서 도무지 감당하지 못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하지만 ‘나’를 위해 십자가에 달리시고 ‘나’의 죄를 멀리 던져버리신 예수께 눈을 두면 상황이 달라진다. 하나님의 독생자가 나를 위해 하신 일을 알고, 그 기쁨과 자유를 맛본 뒤에야 배우자에게도 같은 사랑을 부을 힘이 생긴다는 것이다.

“결혼의 중심에는 영적인 우정이 있다.”

낭만적인 끌림이나 성적인 친밀함도 중요하지만, 그것만으로 긴 세월을 건널 수는 없다. 켈러가 말하는 부부는 하나님을 향한 여정을 함께 걷고, 서로가 더 진실하고 성숙한 사람이 되도록 돕는 친구다. 얼굴의 아름다움은 세월과 함께 변하지만, 공통의 방향을 가진 우정은 오히려 깊어질 수 있다.

가장 마음에 남은 것

결혼은 행복보다 성숙을 목표로 한다는 통찰이 가장 크게 울렸다. 우리는 배우자를 나를 편하게 해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런데 가까운 사람일수록 내가 숨겨온 이기심과 자존심을 정확히 들춰낸다. 연애할 때는 너그러워 보이던 사람도 함께 살아보면 자기 방식에 얼마나 집착하는지 알게 된다. 결혼은 없던 문제를 만들어낸다기보다, 원래 내 안에 있던 문제를 확대해서 보여주는 쪽에 가깝다.

이 시선으로 보면 부부싸움도 조금 다르게 읽힌다. 설거지나 연락 빈도로 다투는 것 같지만, 그 밑에는 “왜 나를 소중히 여기지 않느냐”, “왜 내 뜻대로 움직여주지 않느냐"는 욕망이 숨어 있다. 갈등을 풀려면 누가 더 논리적인지 겨루는 데서 멈추지 말고, 내가 무엇을 절대적인 것으로 붙들고 있는지를 봐야 한다. 배우자는 내 인생의 구원자가 아니고, 내 욕구를 다 채워줄 의무도 없다. 그걸 받아들이면 오히려 상대를 더 자유롭게 사랑할 수 있게 된다.

걸리는 지점

읽으면서 의문이 남은 부분도 있다. 켈러 부부는 남편의 ‘머리 됨’과 아내의 ‘순종’을 상호 희생적인 관계로 해석한다. 남편에게 특권이 아니라 더 큰 자기희생을 요구하고, 부부가 구체적인 역할을 획일적으로 나눠서는 안 된다고 설명하는 지점은 조심스럽다. 그럼에도 이런 말이 가부장적인 문화와 권력의 불균형 속에서 어떻게 오용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더 날카로운 경계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특히 학대나 폭력, 강압적인 지배가 있는 관계에서는 “언약을 지키라”, “희생하라"는 권면이 피해자를 위험 속에 붙잡아두는 말이 될 수 있다. 언약은 폭력을 견디기 위한 허가증이 아니다. 안전 확보와 외부의 도움, 법적 보호가 먼저 필요한 상황은 분명히 존재한다. 이 책의 결혼관을 현실에 적용하려면 사랑과 인내뿐 아니라 권력, 안전, 경제적 종속에 대한 논의도 함께 보충해야 한다고 느꼈다.

읽고 나서 실제로 해본 것

상대를 고치려 들기 전에 내 기대를 문장으로 써봤다. 마음이 껄끄러울 때 “상대가 무엇을 잘못했는가"보다 먼저 “나는 상대가 나에게 무엇을 해줘야 한다고 믿고 있었는가"를 묻기로 했다. 그러자 배려받고 싶은 마음 뒤에 지배욕이, 대화하자는 말 뒤에 반드시 동의를 받아내고 싶은 욕심이 숨어 있는 순간이 보이기 시작했다. 사과할 때도 “그런 뜻이 아니었다"는 해명보다 “내 행동이 당신을 어떻게 아프게 했는지 알겠다"고 말하려 했다. 작은 변화였지만 대화의 온도가 달라졌다.

알랭 드 보통과 나란히 놓으면

알랭 드 보통의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The Course of Love)과 비교하면 흥미롭다. 드 보통은 낭만주의가 결혼에 비현실적인 기대를 심었다고 비판하며, 사랑에는 교육과 연습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 점에서는 켈러와 놀랄 만큼 닮았다. 다만 드 보통이 인간의 불완전함을 심리적인 성숙과 관용으로 다룬다면, 켈러는 그것을 죄와 은혜의 문제로 해석한다. 드 보통에게 결혼이 서로의 결함을 지혜롭게 다루는 기술이라면, 켈러에게 결혼은 받은 은혜를 서로에게 흘려보내는 언약이다.

이런 사람에게

『팀 켈러, 결혼을 말하다』는 결혼을 앞둔 연인에게만 필요한 책이 아니다. 배우자에게 실망한 부부, 결혼에 대한 환상과 두려움 사이에서 흔들리는 미혼, 기독교가 왜 결혼을 중히 여기는지 궁금한 사람에게 권하고 싶다. 다만 성역할 해석에는 동의하지 않는 독자도 있을 것이고, 학대나 심각한 관계의 위기를 다루는 전문 상담서로 읽어서는 안 된다.

결혼에 대한 책은 아주 많지만, 이 책은 성경적으로 바른 결혼이 무엇인지를 차가운 논리와 따뜻한 감성 양쪽으로 가르쳐준다. 역시 켈러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이 남기는 가장 중요한 질문은 “누구와 결혼하면 행복해지는가"가 아니다. “나는 한 사람을 오래 사랑할 수 있는 인간으로 어떻게 변해가는가"에 가깝다. 좋은 결혼은 상처 없는 두 사람이 만나 만들어내는 작품이 아니다. 자기중심적인 두 사람이 서로 용서하고 약속을 갱신하면서, 서로를 통해 조금씩 새로워지는 과정이다. 켈러가 말하는 결혼의 아름다움은 완벽한 로맨스에 있지 않다. 도망칠 이유가 생긴 뒤에도 진실을 말하고, 다시 한번 손을 내밀고, 상대가 되어가는 모습을 끝까지 바라보는 일 안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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