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크리스마스 포장지를 벗기고 만난 예수 — 티모시 켈러 『예수, 예수』

발행 읽는 시간 약 7분

얼마 전 세상을 떠난 팀 켈러의 책을 읽었다.

이 시대에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관심도 사랑도 조금씩 식어가는 것 같다. 거리마다 캐럴이 흐르던 계절은 이미 멀어졌고, 옆을 지나는 사람들의 얼굴에서 성탄의 기쁨을 발견하는 일도 드물어졌다. 12월이 그저 바쁜 달이 되어버린 느낌이다.

그래도 예수는 변함없이 우리의 그리스도이고, 알면 알수록 기쁨이 넘쳐나는 은혜가 거기 있다. 켈러는 이 시대에 그 예수가 얼마나 귀한지를 성경을 토대로 한 걸음씩 논증해 간다. 그답게 논리적이고 설득력 있으며, 차분한데도 어딘가 뜨거운 글이다.

화성에 착륙하고, AI가 온갖 곳에 들어오고, 로봇이 일을 대신하는 이 시대에도 예수라는 인물을 탐구하고 알아가는 일은 누구에게나 깊은 감동이자 생명이 된다. 메마른 삶에 샘물이 닿는 느낌이다. 이 책은 그런 갈증을 가진 독자에게 확실한 해갈과 쉼을 주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예수, 예수』는 2016년에 나온 Hidden Christmas를 윤종석이 옮겨 2017년 두란노에서 펴낸 신앙서다. 장르로 치면 크리스마스 묵상집에 가깝다. 다만 따뜻하고 아름다운 성탄 이야기만 들려주는 책은 아니다. 켈러는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의 성탄 기사를 통해 성육신, 은혜, 죄, 믿음, 평화라는 기독교의 중심 주제를 차례로 풀어낸다. 크리스마스 장식 뒤에 가려져 버린 예수를 다시 한번 보여주는 일종의 복음 변증서라고 해도 좋겠다.

성탄은 생각보다 훨씬 불편한 이야기였다

읽으면서 가장 먼저 느낀 건, 성탄 이야기가 상상보다 훨씬 불편한 이야기라는 점이었다.

우리는 아기 예수, 천사, 별, 동방박사 같은 장면을 따뜻한 동화처럼 기억한다. 그런데 켈러가 보여주는 성탄은 인간의 선함을 축하하는 축제가 아니다. 오히려 인간이 제 힘으로는 어둠에서 빠져나올 수 없기에 빛이 바깥에서 찾아온 사건이다. 하나님이 인간이 되셨다는 말에는 인간의 존엄을 높이 들어 올리는 위로가 있다. 동시에 인간에게는 자신을 구할 힘이 없다는 날카로운 진단도 들어 있다.

그래서 이 책의 예수는 단지 뛰어난 교사나 도덕적 모범으로 등장하지 않는다. 길을 조금 더 잘 가르쳐주는 안내자가 아니라, 길을 잃은 인간에게 제 발로 걸어온 구원자로 나타난다.

대개 사람들은 “조금 더 노력하면 나아진다"고 말한다. 켈러도 그 희망을 전면 부정하지는 않는다. 다만 인간의 가장 깊은 곳에 있는 문제는 노력 부족이 아니라 마음의 왕좌를 자기가 차지하고 있는 것이라고 본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면서 실제로는 자기 계획, 인정받고 싶은 마음, 성공, 안전을 절대적인 것으로 섬기고 있을 때가 있다. 헤롯이 왕의 자리를 위협하는 아기를 없애려 했던 것처럼, 내 안의 작은 헤롯도 나를 다스리려는 하나님을 짐스럽게 여긴다.

오래 남은 세 문장

“당신을 혼자 두지 않으시려고, 당신처럼 되셨다.”

성육신의 의미를 이보다 더 쉽게 표현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기독교의 하나님은 멀리서 고통을 분석하는 신이 아니다. 배고픔과 피로, 오해와 배신, 죽음의 공포 속까지 들어온 하나님이다. 고난이 왜 일어나는지 그 이유를 다 설명해주지는 않는다. 다만 적어도 하나님이 고난 바깥의 안전한 자리에서 우리를 훈계하고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은 보여준다.

“내 안에서 날뛰는 ‘헤롯 왕’이 물러나야 한다.”

이 한 문장에서 신앙의 문제가 지식의 문제가 아니라 통치권의 문제라는 걸 깨달았다. 나는 하나님께 도움은 받고 싶어도 주도권까지 넘기고 싶지는 않을 때가 많았다. 기도하면서 이미 결론을 정해두고, 하나님이 그 결론을 승인해주기만 바랐다. 겉으로는 순종이라고 말하면서 안에서는 내가 왕이었던 셈이다.

“복음을 똑바로 바라보는 만큼 두려움은 힘을 잃는다.”

두려움이 사라진 다음에 믿음이 생기는 게 아니라, 복음을 더 깊이 바라볼 때 두려움이 차지하던 자리가 줄어든다는 뜻으로 읽었다. 사랑받을 자격이 있어서 사랑받는 것이라면, 실패할 때마다 사랑도 함께 사라져버린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은혜가 조건 없는 선물이라면, 실패가 나라는 존재의 전부를 판결할 수는 없다. 이건 막연한 긍정과는 다르다. 현실을 작게 잡는 게 아니라, 현실보다 큰 은혜 안에서 현실을 보는 태도다.

족보의 식탁에는 아무도 제 자격으로 들어가지 못한다

특히 인상에 남은 건 예수의 족보에 대한 해석이었다.

고대 사회에서 족보는 가문의 명예를 과시하는 수단이었는데, 예수의 족보에는 도덕적으로 흠이 있는 사람이나 당시 사회에서 변두리로 밀려나 있던 사람이 들어 있다. 켈러는 이것을 은혜의 성격과 연결한다. 복음의 식탁에는 경력을 자랑할 수 있는 사람도 없고, 과거 때문에 숨어야 하는 사람도 없다. 누구든 초대받을 수 있지만, 아무도 제 자격으로는 들어가지 못한다.

교회가 이 진리를 정말로 믿는다면 세상에서 가장 체면을 따지지 않는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그런데 현실의 교회가 학력이나 직업, 정치적 성향, 신앙 연차에 따라 은근히 사람의 등급을 나누고 있다면, 그건 복음의 실패라기보다 복음을 충분히 믿지 못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걸린 부분도 솔직히 적어둔다

읽으면서 의문도 생겼다.

켈러는 개인의 마음속 우상과 영적인 어둠을 아주 정교하게 분석한다. 반면에 빈곤이나 차별, 전쟁과 불평등처럼 개인의 회심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구조적인 악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짧게 다룬다. 사람의 마음이 변해야 사회도 변한다는 말은 맞다. 그렇다고 선량한 개인이 모이면 반드시 정의로운 제도가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다.

성육신이 하나님이 구체적인 역사와 물질세계 안으로 들어오신 사건이라면, 그 복음은 개인의 내면뿐 아니라 노동, 경제, 정치, 공동체의 질서에까지 더 적극적으로 질문을 던져야 하지 않을까. 이 책의 설명이 틀렸다기보다, 독자가 다음 질문을 스스로 이어받아야 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실제로 해본 건 작은 일이었다

읽고 나서 실제로 시도한 건 거창한 게 아니었다.

누군가의 말에 기분이 상했을 때, 곧바로 상대의 잘못을 계산하는 대신 내 안에서 무엇이 위협받았는지를 먼저 들여다보려고 했다. 인정받고 싶은 마음, 옳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은 욕심, 상황을 통제하고 싶은 집착이 보였다. 그걸 알아차렸다고 해서 바로 성숙한 사람이 되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화를 정의감으로 포장하는 일은 조금 줄었다.

또 하나.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만났을 때 ‘나는 베푸는 쪽’이라는 우월감 대신, 나 역시 은혜의 식탁에 초대받은 손님이라는 사실을 떠올리려고 했다. 신앙은 내가 높은 자리에서 낮은 사람을 돕는 일이 아니라, 먼저 낮아지신 그리스도를 따라 서로의 곁으로 내려가는 일이라고 생각하게 됐다.

곁에 두고 읽는다면

C. S. 루이스의 『순전한 기독교』가 논리적인 변증으로 신앙의 문을 연다면, 『예수, 예수』는 성탄이라는 익숙한 문을 열고 그 안쪽에 숨어 있던 복음의 낯선 풍경을 보여준다.

반대로 리처드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과 나란히 놓으면 출발점부터 다르다. 도킨스는 신앙을 인간이 지어낸 설명으로 의심하지만, 켈러는 오히려 인간의 욕망이 자기에게 편한 신을 만들어낸다고 지적한다. 그런데 구유에 누이고 십자가를 향해 걸어가는 예수는, 인간이 권력욕을 채우려고 발명하기에는 너무 낮고 너무 불편한 신이다. 이 대비가 꽤 흥미롭다.

이 책은 해마다 크리스마스를 보내면서도 예수의 탄생이 왜 복음인지 막연한 사람, 교회를 오래 다녔지만 은혜보다 의무에 지친 사람, 기독교는 결국 “착하게 살라"는 종교 아니냐고 묻는 사람에게 권하고 싶다. 깊은 신학을 다루면서도 문장이 어렵지 않아 아직 신앙이 없는 사람이나 신앙을 막 시작한 사람도 읽을 수 있다. 다만 사회 윤리나 역사적인 문제까지 충분히 다룬 책을 기대하면 다소 좁게 느껴질 수 있다.

남은 결론

『예수, 예수』가 내게 남긴 결론은 단순하다.

크리스마스의 핵심은 우리가 하나님을 찾아 올라간 이야기가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찾아 내려오신 이야기라는 것. 그리고 그 ‘내려오심’을 믿는다는 건 감동적인 성탄 장면을 바라보다 끝나는 일이 아니다. 내 안의 왕좌에서 내려와 다른 사람의 낮은 자리 곁으로 걸어가는 일이다.

화려한 불빛이 꺼진 뒤에도 예수라는 이름이 남는다면, 그때에야 크리스마스는 한 계절의 축제가 아니라 인생을 다시 시작하게 하는 복음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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