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언어가 오늘을 깨운다

한동일의 『라틴어 수업』을 읽고 쓴 서평. 서강대 알바트로스 탑의 '오베디레 베리타티'에서 시작해, 죽은 언어가 왜 여전히 우리를 흔드는지, 공부가 어디를 향해야 하는지를 정리했다. 책이 놓친 부분에 대한 아쉬움도 함께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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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라틴어 수업 표지

라틴어 수업

저자
한동일
출판사
흐름출판
출간
2017
읽은 날
2026년 8월 13일

“공부는 남보다 높아지는 사다리가 아니라, 어제와 다른 사람이 되어 가는 긴 노동이다.”

한 줄 평

정문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보이는 것

서강대학교 정문을 들어서면 가장 먼저 보이는 게 알바트로스 탑이다. 그 탑에 라틴어 문구가 적혀 있다.

Obedire Veritati 오베디레 베리타티 — 진리에 순종하라

서강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고, 어딘가 마음 한구석에 담고 사는 말이다. 나도 그랬다. 처음엔 그냥 학교 표어였다. 시험 기간에 그 앞을 지나다닐 땐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그런데 학교를 떠나고 몇 해가 지나니, 이상하게 그 문장만 남았다. 진리를 알라가 아니라 진리에 순종하라고 했다는 사실이 뒤늦게 걸렸다. 아는 것과 따르는 것 사이의 거리를, 그 문장은 처음부터 알고 있었던 셈이다.

라틴어는 죽은 언어다. 그런데 죽은 언어가 이렇게 오래 남아서 사람 마음을 건드린다. 한동일의 『라틴어 수업』을 집어 든 건 그 이상한 감각 때문이었다.

‘공부 노동자’가 쓴 인문 에세이

『라틴어 수업』은 저자가 2010년부터 2016년까지 서강대에서 진행한 라틴어 강의를 바탕으로 쓴 인문 에세이다. 초판은 2017년, 2023년에는 새 원고를 더한 개정증보판이 나왔다.

저자의 이력은 화려하다. 교황청립 라테라노대학교에서 교회법을 공부했고, 동아시아 최초로 교황청 대법원인 로타 로마나의 변호사가 됐다. 그런데 책에서 그는 이 경력을 앞세우지 않는다. 대신 자신을 끊임없이 공부해야 하는 ‘공부 노동자‘라고 부른다. 그 표현 하나만으로도 이 책이 성공한 지식인의 자기 자랑과는 거리가 멀다는 걸 짐작할 수 있다.

제목만 보면 문법 교재 같다. 하지만 펼쳐 보면 명사의 격변화나 동사 활용보다, 인간이 왜 배우고 어떻게 실패를 견디며 무엇을 위해 사는지에 관한 이야기가 훨씬 많다. 라틴어를 매개로 고대 로마의 역사와 종교, 유럽의 문화와 법률을 훑다가 어느 순간 저자의 유학 시절과 학생들의 고민으로 넘어간다. 수업은 언어의 교실에서 시작하지만, 결국 삶의 교실에 도착한다.

죽었다고 사라진 건 아니다

흔히 라틴어를 ‘죽은 언어’라고 한다. 일상어로 쓰는 민족이나 국가가 더는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죽었다고 사라진 건 아니다.

영어와 프랑스어, 이탈리아어와 스페인어 곳곳에 라틴어의 흔적이 남아 있다. 법률과 의학, 철학과 신학의 언어에는 여전히 깊이 스며 있다. 우리가 매일 쓰는 ‘데이터’, ‘아젠다’, ‘보너스’ 같은 말도 라틴어다. 죽었다고 하는데 하루도 안 쓰는 날이 없다.

저자는 이 역설을 통해 슬쩍 다른 이야기를 꺼낸다. 인간의 삶도 당장의 유용성만으로 판단할 수 없다는 것. 지금 쓸모없어 보이는 공부가 훗날 한 사람의 사고방식 전체를 만들 수 있고, 지금은 실패로 보이는 시간이 인생 전체를 떠받치는 뿌리가 될 수도 있다. 취업에 도움 안 되는 전공, 돈 안 되는 관심사, 아무도 안 알아주는 몇 년. 그게 정말 버린 시간인지는 한참 뒤에야 알게 된다.

오래 남은 네 문장

책에는 라틴어 문장이 수없이 나오지만, 유독 오래 남은 게 몇 개 있다.

“Non scholae, sed vitae discimus.”

“학교를 위해서가 아니라 인생을 위해서 배운다.”

교육이 입시와 취업을 위한 기술로 축소된 시대에 이 문장은 꽤 아프게 다가온다. 무엇을 배웠는가보다 그 배움으로 어떤 사람이 됐는가를 묻기 때문이다. 많이 알아도 타인의 고통에 무감각하다면, 그 공부는 대체 어디를 향한 걸까. 저자는 공부의 궁극적 목적을 경쟁자의 탈락이 아니라 자신의 변화와 배운 것의 나눔에서 찾는다.

“Hodie mihi, cras tibi.”

“오늘은 나에게, 내일은 너에게.”

묘지에서 볼 수 있는 말이다. 오늘 죽음이 나를 찾아왔지만, 내일은 살아 있는 너를 찾아갈 거라는 경고다. 섬뜩하지만 절망적인 말만은 아니다. 죽음을 기억할 때 오히려 오늘이 선명해지니까.

기독교 전통의 메멘토 모리, 곧 죽음을 기억하라는 권면도 삶을 포기하라는 말이 아니다. 유한한 시간을 헛되이 낭비하지 말라는 요청이다. 죽음은 삶의 반대편에 있는 사건이 아니라, 오늘의 우선순위를 바로잡아 주는 거울이다.

“Carpe diem.”

너무 유명해져서 광고 문구처럼 가벼워졌다. 하지만 “오늘을 붙잡아라"는 말은 무책임하게 현재를 즐기라는 뜻이 아니다. 아직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한 불안 때문에 오늘 해야 할 사랑과 공부를 미루지 말라는 뜻에 가깝다.

나도 늘 그랬다. “조금 더 여유가 생기면 사람을 챙겨야지.” “마음이 좀 안정되면 시작해야지.” 그런데 완벽하게 준비된 날은 좀처럼 오지 않는다. 여유가 생기면 다른 일이 생기고, 마음이 안정될 만하면 또 흔들린다. 지금 할 수 있는 작은 일을 붙드는 게, 결국 미래를 기다리는 가장 정직한 방법이었다.

“Si vales bene est, ego valeo.”

“네가 잘 지낸다면 잘된 일이고, 나도 잘 지낸다.”

로마 시대 편지의 첫머리에 쓰이던 인사다. 짧은 말인데 묘하게 마음이 따뜻해진다. 요즘 인사는 종종 의례로 끝나는데, 이 문장은 나의 평안과 너의 평안이 연결돼 있다는 감각을 품고 있다.

읽다가 바울 서신의 문안이 떠올랐다. 편지마다 안부부터 묻고 사람 이름을 하나하나 부른다. 신앙은 거대한 교리를 고백하는 일인 동시에, 멀리 있는 사람의 안부를 묻는 행위다. 누군가의 형편을 진심으로 묻는 짧은 인사가, 때로는 긴 설교보다 복음에 가깝다.

실패한 시간을 함부로 버리지 않는 태도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저자가 고통을 낭만화하지 않으면서도, 실패한 시간을 함부로 폐기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외국에서 고도의 전문 과정을 밟는 삶은 겉으로 보면 근사하다. 하지만 실제로는 낯선 언어와 생활고, 불확실한 미래를 견디는 시간이었다. 저자는 그 과정을 의지와 열정만으로 이겨 냈다고 말하지 않는다. 지치고 흔들렸던 순간을 숨기지 않는다.

그래서 그의 조언에는 자기계발서 특유의 승리감이 없다. “나도 해냈으니 너도 할 수 있다"가 아니라, “힘든 네가 이상한 게 아니다"라고 말하는 것처럼 들린다. 이 차이가 생각보다 크다. 앞의 말은 못 해낸 사람을 은근히 탓하지만, 뒤의 말은 곁에 앉는다.

공부는 바벨탑이 될 수도, 다리가 될 수도 있다

기독교적 관점에서 보면 이 책의 공부론은 소명에 관한 이야기로도 읽힌다.

재능은 남보다 앞서기 위한 사유물이 아니라, 공동체를 섬기도록 맡겨진 선물이다. 공부도 마찬가지다. 자신을 높이기 위한 바벨탑이 될 수도 있고, 이웃의 언어를 이해하고 고통을 덜어 주는 다리가 될 수도 있다. 중요한 건 지식의 양이 아니라 지식이 향하는 방향이다.

바울이 “지식은 교만하게 하며 사랑은 덕을 세운다"고 했듯이, 사랑을 잃은 공부는 사람을 등급으로 나누는 정교한 폭력이 되기 쉽다. 배운 사람이 더 잔인해지는 경우를 우리는 이미 충분히 봤다.

그래도 아쉬운 것들

읽으면서 의문이 전혀 없었던 건 아니다.

책은 라틴어 한 문장에서 인생의 교훈으로 자연스럽게 건너간다. 그런데 때로는 그 거리가 너무 짧게 느껴진다. 고대 격언이 만들어진 정치적·계급적 맥락보다 오늘의 위로에 초점이 맞춰지면서, 문장이 원래 지녔던 복잡성이 옅어지는 부분이 있다.

로마 문명은 법과 언어라는 위대한 유산을 남겼지만, 동시에 노예제와 정복 전쟁 위에 세워진 제국이었다. 그 격언들을 남긴 사람들은 대개 노예를 부리는 계층이었다. 고전의 아름다움을 말할 때 그 문명을 지탱한 폭력까지 함께 살폈다면, 책의 인문학적 깊이가 한 겹 더해졌을 것이다.

청춘의 고통을 주로 공부와 성장의 문제로 해석한다는 점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어떤 실패는 개인의 인내 부족이 아니라 불평등한 교육 환경과 불안정한 노동 구조에서 생긴다. 마음가짐을 바꾸는 것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고통도 분명히 있다. “견디면 성장한다"는 말이 누군가에게는 위로가 되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계속 참으라는 압박이 된다.

그러니 이 책의 문장들은 개인의 성찰에만 머물지 말고, 서로가 인간답게 공부하고 일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질문으로 확장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읽고 나서 바꾼 것

책을 덮고 나서 공부하는 방식을 조금 바꿔 봤다.

첫째, 뭘 읽을 때 빨리 끝내거나 기억할 문장을 수집하는 데 집착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 하루에 한 문장이라도 내 말로 다시 써 봤다. 밑줄 긋는 건 쉬운데 내 문장으로 옮기는 건 어렵다. 어려운 만큼 남는다.

둘째, 배운 내용을 실제 관계에 연결했다. “오늘을 붙잡으라"는 말을 읽은 날엔 미뤄 뒀던 안부 전화를 걸었다. “학교가 아니라 삶을 위해 배운다"는 문장을 읽은 뒤엔, 내가 지금 배우는 게 누구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지를 적어 봤다.

대단한 변화는 아니다. 그래도 공부가 머릿속의 축적에서 생활의 태도로 조금씩 이동하는 느낌은 들었다.

『수레바퀴 아래서』와 같이 읽으면

헤르만 헤세의 『수레바퀴 아래서』와 나란히 읽어도 흥미롭다.

『라틴어 수업』이 배움을 통해 인간이 성장할 가능성을 따뜻하게 말한다면, 『수레바퀴 아래서』는 경쟁 중심의 교육이 한 인간을 어떻게 부수는지 보여 준다. 두 책은 정반대인 것 같지만 결국 같은 질문을 던진다.

교육은 사람을 살리는가, 아니면 사회가 원하는 모양으로 깎아 내는가.

한동일은 공부를 다시 삶의 자리로 돌려놓으려 하고, 헤세는 삶을 잃어버린 공부의 비극을 고발한다. 방향이 다를 뿐 향하는 곳은 같다.

누구에게 권할까

이 책은 라틴어를 전문적으로 배우려는 사람보다, 공부에 지쳤거나 자기 속도가 너무 느리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더 잘 맞는다. 대학생과 취업 준비생뿐 아니라, 삶이 정체됐다고 느끼는 어른에게도 권하고 싶다.

깊은 철학 체계를 기대하면 다소 느슨하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바쁜 하루 중에 한 문장 앞에 잠시 멈춰 서고 싶은 사람에게는 좋은 책이다.

마지막에 남는 질문

『라틴어 수업』은 죽은 언어를 가르치는 책이 아니다. 오히려 성과와 속도에 눌려 무감각해진 삶을 다시 깨우는 책이다.

공부란 남보다 높은 자리에 오르기 위한 사다리가 아니라 어제와 다른 사람이 되어 가는 긴 노동이라는 것. 그리고 제대로 배운 사람은 자신이 아는 것을 결국 타인에게 건네야 한다는 것. 이 두 가지가 책 전체를 관통한다.

책장을 덮고 나면 라틴어 단어보다 한 가지 질문이 오래 남는다.

나는 지금 무엇을 배우고 있는가가 아니라, 그 배움을 통해 어떤 사람이 되어 가고 있는가.

다시 알바트로스 탑이 떠오른다. 오베디레 베리타티. 진리에 순종하라. 아는 것으로 끝나지 말고 따르는 데까지 가라는 말이었다. 스무 살엔 그냥 지나쳤던 여섯 글자를, 이제야 조금 알아듣는다.

총평

좋았던 점

  • 라틴어 한 문장에서 시작해 삶의 질문으로 자연스럽게 건너가는 구성
  • “나도 해냈으니 너도 할 수 있다"가 아니라 “힘든 네가 이상한 게 아니다"라고 말하는 태도
  • 저자가 자신을 ‘공부 노동자’로 부르며 유학 시절의 흔들림을 숨기지 않는다
  • 라틴어를 몰라도 읽히고, 한 꼭지가 짧아 바쁜 날에도 한 편씩 읽기 좋다

아쉬운 점

  • 고대 격언이 만들어진 정치적·계급적 맥락보다 오늘의 위로에 무게가 실려, 문장의 복잡성이 다소 옅어진다
  • 청춘의 고통을 주로 공부와 마음가짐의 문제로 해석해, 구조적 원인은 상대적으로 덜 다룬다
  • 체계적인 철학이나 라틴어 학습을 기대하면 느슨하게 느껴질 수 있다

이런 분께 권합니다

  • 공부에 지쳤거나 자신의 속도가 너무 느리다고 느끼는 사람
  • 취업과 시험에 눌려 ‘왜 배우는가’를 잊어버린 대학생과 수험생
  • 삶이 정체된 것 같아 짧은 문장 앞에 잠시 멈춰 서고 싶은 어른
  • 인문 에세이로 라틴어 문화권의 지혜를 처음 접해 보려는 독자

한 줄로 남기면

“공부는 남보다 높아지는 사다리가 아니라, 어제와 다른 사람이 되어 가는 긴 노동이다.”

자주 묻는 질문

라틴어를 전혀 모르는데 읽을 수 있나?
읽을 수 있다. 문법서가 아니라 인문 에세이다. 라틴어 문장은 매 꼭지의 문을 여는 열쇠 역할을 하고, 본문은 그 문장이 건드리는 삶의 이야기로 채워진다.
이 책으로 라틴어를 배울 수 있나?
체계적인 학습은 어렵다. 격변화나 동사 활용을 익히려면 별도의 문법 교재가 필요하다. 다만 라틴어가 왜 여전히 살아 있는 언어인지, 왜 배울 만한지에 대한 동기는 충분히 얻는다.
초판과 개정증보판 중 무엇을 읽어야 하나?
새로 읽는다면 2023년 개정증보판이 낫다. 원고가 추가돼 있다. 초판을 이미 읽었다면 굳이 다시 살 만큼의 차이는 아니다.
기독교 신자가 아니어도 괜찮나?
괜찮다. 저자가 교회법 전공자라 신학과 교회 이야기가 나오지만 신앙을 전제하지 않는다. 종교적 배경 없이도 공부와 삶에 대한 이야기로 충분히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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