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 위의 신학 - 피터 워커 『바울의 발자취를 따라서』

사도행전의 지명들이 자꾸만 헷갈린다면 『바울의 발자취를 따라서』를 펼쳐보자. 지리를 통해 성경이 살아나고, 바울의 삶이 자세히 보이기 시작한다. 지도와 현장 답사 30년을 담은 신약학자 피터 워커의 책이 던지는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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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바울의 발자취를 따라서 표지

바울의 발자취를 따라서

In the Steps of Saint Paul

저자
피터 워커
옮긴이
박세혁
출판사
CUP
출간
2023
읽은 날
2026년 8월 25일

“성경의 문장에 지도를 겹치면, 종이 위의 글이 땅 위의 행동이 된다.”

한 줄 평

표지와 헷갈림

사도행전을 자주 읽는 사람이라도 늘 헷갈리기는 마찬가지다. 바울의 첫 번째 선교여행과 두 번째, 세 번째가 정확히 어디서 어디까지인지. 책을 펴들 때마다 어느 부분이 어느 여행에 해당하는지 찾아야 했다.

그럼 이렇게 읽기 어려운 부분이 왜 자꾸 돌아올까. 내가 느낀 가장 큰 이유는 이거였다. 나는 이 장들을 표로 기억하려고 했다. 지도상의 점들을 1차, 2차, 3차로 분류하는 식으로. 하지만 바울은 화살표처럼 움직인 사람이 아니었다.

책과의 만남

피터 워커의 『바울의 발자취를 따라서』는 흔히 생각하는 바울 전기와는 결이 다르다. 바울이 무엇을 믿었고 어떤 신학을 남겼는지를 설명하는 데만 머물지 않는다. 이 사람이 어디를 걸었는가를 집요하게 좇아간다.

워커는 케임브리지에서 고전학과 초기 기독교 역사를 공부한 뒤 오랫동안 신약학을 가르쳤다. 그리고 30년을 넘게 성경의 땅을 직접 밟아온 학자다. 2023년 한국어판은 박세혁이 번역했고 CUP에서 출간됐다. 다메섹에서 시작해 다소, 안디옥, 구브로, 갈라디아, 마게도냐, 아덴, 고린도, 에베소, 예루살렘을 거쳐 로마에 이르기까지 바울의 걸음을 실제 지도 위에 펼쳐놓는다.

처음엔 성지순례 가이드인 줄

처음 이 책을 집어 들었을 때 나는 그걸 일종의 ‘성지순례 안내서’로 생각했다. 지리 정보를 담은 여행 가이드라고 말이다. 그런데 읽다 보니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다.

이 책의 진짜 장점은 지리를 설명한다는 데 있지 않다. 지리를 통해 성경 문장에 무게를 되돌려준다는 것에 있다.

사도행전을 반복해서 읽으면 바울의 이동이 너무 익숙해진다. 안디옥에서 출발하고, 구브로를 거쳐 소아시아로, 마게도냐로 건너가고, 빌립보와 데살로니가를 지나고, 아덴과 고린도로 내려간다. 오래 공부하면 이것들을 몇 개의 표 속 숫자로 기억하게 된다.

하지만 지도를 펼치고 거리를 보고, 산맥과 항구를 보고, 당시의 도로를 생각해보면 이야기가 전혀 달라진다.

걸어야 했다. 배를 기다려야 했다. 산을 넘어야 했다. 강도를 만날 위험과 병, 추위와 더위를 감수해야 했다. 한 도시에서 박해를 받고 쫓겨난 뒤 다음 도시로 이동하는 것이 우리가 성경 두세 절을 넘기는 것처럼 간단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 사실을 깨닫고 나니 고린도후서에서 바울이 자신의 수고와 위험을 이야기하는 대목도 완전히 다르게 들렸다. 그의 신학은 안전한 서재에서 만들어진 관념이 아니었다. 길 위에서 맞고, 교회를 걱정하고, 동역자와 갈등하고, 다시 복음을 외치면서 형성된 신학이었다.

마음에 남은 문장들

책에서 특히 기억되는 문장이 두 개 있다.

첫 번째는 이것이다: "‘바울의 발자취를 따라간다’는 것은 지중해 주위를 광범위하게 여행한다는 것을 뜻한다."

아주 평범해 보이지만 이 책 전체를 압축하는 말이다. 예수의 공생애가 팔레스타인이라는 비교적 제한된 영역에서 일어났다면, 바울의 사역은 로마 제국의 도로와 항구를 통해 놀라울 정도로 널리 확산됐다. 복음이 한 지역의 종교가 아니라 국경과 언어와 문화를 넘는 소식이었다는 사실이 지리 자체를 통해 드러난다.

두 번째 문장도 흥미롭다: “예수에 관한 메시지가 이렇게 급속도로 퍼졌다는 것은 예수의 부활에 대한 추가적인 증거가 된다.”

다메섹 사건을 설명하면서 나오는 말인데, 시각을 돌려본 것이다. 우리는 대개 다메섹 도상에서 바울 개인의 회심에만 집중한다. 그런데 워커는 질문을 바꾼다. 바울이 그리스도인을 잡으러 다메섹까지 갔다는 사실은 역설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미 복음이 예루살렘 밖으로 상당한 속도로 퍼지고 있었다는 뜻이 아닌가. 박해자 바울의 이동 경로 자체가 초기 기독교의 확산을 증언하고 있었던 것이다.

안디옥의 의미

안디옥에 대한 부분도 깊이 있었다. 워커는 이 도시를 바울 영웅담의 출발점쯤으로만 취급하지 않는다. 이곳은 바울을 자꾸만 내보내고 다시 받아들인 교회였다.

“그는 여기에서 ‘1차,’ ‘2차,’ ‘3차’ 여행을 출발했다.”

이 문장을 읽으며 나는 깨달았다. 나는 그동안 바울만 너무 크게 봤다는 것을. 바울 뒤에는 안디옥 교회가 있었다. 기도하고 사람을 보내는 공동체가 있었고, 바나바가, 실라와 디모데와 누가가 있었다. 신약의 선교는 위대한 개인이 홀로 세계를 바꾸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교회가 사람을 보내고, 사람이 다시 공동체로 돌아오는 구조였다.

이것은 오늘날 교회에도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자꾸만 유명한 목회자나 선교사 한 사람에게만 시선을 집중하는 우리의 관습에 대해서 말이다. 성경은 사역을 개인이 아니라 공동체 안에서 본다. 누군가 앞에 설 때 그 뒤에는 이름 없는 많은 사람이 있다. 바울조차 홀로 일하지 않았다면, 우리 역시 모든 것을 혼자 감당할 수 있다는 생각을 내려놓아야 한다.

경계하는 지점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며 약간 조심해야 할 부분도 있다. 고고학과 지리는 성경을 이해하는 데 놀라울 정도로 유용하지만, 그것이 본문의 의미를 자동으로 결정해주는 것은 아니다. 고대 도시의 위치가 확인되고 도로가 복원된다고 해서 바울의 모든 행동 동기까지 확정되는 것은 아니다.

워커 자신도 조심스럽게 가능성을 제시하는 경우가 많지만, 독자는 ‘현장이 이렇다면 바울도 반드시 이렇게 생각했을 것’이라고 너무 빨리 결론 내리지 않을 필요가 있다.

특히 사도행전과 바울서신 사이의 연대를 재구성하는 문제에는 학자들 사이에도 여러 견해가 있다. 따라서 이 책은 최종적인 바울 연구서라기보다 역사와 지리라는 창을 통해 바울을 새롭게 보는 안내자로 읽을 때 가장 가치를 발한다고 생각한다.

아덴에서 만나는 재미

아덴에 이르면 또 다른 층위의 흥미가 생긴다. 바울이 아레오바고에서 철학자들과 논쟁했다는 이야기는 익숙하지만, 당시 그 장소가 어떤 문화적 무게를 가지고 있었는지를 알게 되면 사도행전 17장이 살아 움직인다. 에피쿠로스와 스토아 철학자들이 시험 문제 속의 철학파가 아니라 실제 광장에서 바울과 논쟁했던 인물들로 느껴진다.

복음은 문화와 떨어져 전해지지 않았다. 바울은 상대가 살아가는 언어와 사상의 세계 안으로 들어가면서도 창조주와 심판과 부활이라는 복음의 핵심을 포기하지 않았다.

여기서 느껴지는 것은 오늘날 그리스도인이 배워야 할 것이 많다는 것이다. 세상과 대화하려면 복음을 희석해야 한다는 생각도 위험하고, 복음을 지키려면 세상의 언어를 몰라도 된다는 태도 역시 위험하다. 바울은 두 가지를 동시에 했다. 상대의 세계를 이해하면서도 그 세계관에 흡수되지 않았다.

로마에 도착했을 때

책의 후반부, 로마에 도착했을 때 묘한 감정이 밀려온다. 다메섹 길에서 쓰러졌던 한 유대인 청년이 결국 제국의 수도까지 온 것이다. 하지만 그의 도착은 개선장군의 입성이 아니었다. 죄수의 모습이었다.

이 역설이 바울의 삶을 가장 잘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세상의 기준으로 보면 계속 실패하고 밀려난 사람인데, 복음의 관점에서는 정확히 그 고통과 이동을 통해 복음이 세계의 중심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그가 그의 삶을 통해 무엇을 이뤘는지 평가해보기에 좋은 곳이다.”

이 표현을 읽고 나는 자연스럽게 내 삶에도 같은 질문을 던지게 됐다. 나는 어디까지 갔는가보다 무엇을 위해 움직이고 있는가. 얼마나 많은 일을 했느냐보다 내 시간이 어떤 방향을 향하고 있는가.

가장 놀라운 것

바울의 삶에서 가장 놀라운 것은 이동 거리가 아니다. 그 긴 길의 방향이 거의 한 번도 바뀌지 않았다는 것이다. 감옥에서도, 배가 난파될 때도, 교회가 그를 오해할 때도 그의 중심에는 그리스도의 복음이 있었다.

그래서 이 책을 덮은 뒤 내가 적용해보고 싶었던 것은 거창한 선교 계획이 아니었다. 내가 이미 서 있는 장소를 조금 다르게 보는 것이었다. 가정도, 일터도, 교회도 단순히 하루를 소비하는 배경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두신 하나의 장소라고 생각해보는 것이다.

바울에게 다소와 안디옥과 고린도와 로마가 각각의 의미를 가졌듯, 우리의 신앙도 결국 구체적인 장소와 사람 속에서 드러난다.

가장 좋은 초대

그리고 이 책에서 가장 좋아하는 문장은 어쩌면 이것이다:

“이 책은 이제 당신도 바울의 여행에 동참하고 그의 길을 따라 길 위에서 그로부터 배워보라는 초대다.”

정확한 표현이다. 『바울의 발자취를 따라서』는 바울을 멀리서 존경하게 만드는 책이 아니라 그의 뒤를 따라 걷게 만드는 책이다.

사도행전의 지명이 자꾸 헷갈리는 사람, 바울서신을 읽으며 왜 이 편지가 이 도시에서 나왔는지 궁금했던 사람, 성경 역사와 고고학에 관심 있는 사람에게 특히 좋다. 반대로 바울의 칭의론이나 영적 연합, 율법 이해 같은 신학적 논쟁을 깊이 있게 연구하려는 독자라면 이 책 하나만으로는 부족하다.

그래도 나는 이 책의 부족함이 오히려 선명해서 좋았다. 워커는 바울의 모든 것을 설명하려 하지 않는다. 대신 한 가지를 아주 잘한다:

바울이 실제로 이 땅을 걸었던 사람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게 해준다.

그 사실을 깨닫고 나면 사도행전의 무수한 지명이 더 이상 페이지 속의 낯선 단어로 보이지 않는다. 다메섹도, 안디옥도, 고린도도, 로마도 한 사람이 복음을 품고 지나간 길이 되어 있다.

결국

바울의 발자취를 따라가다 보면 이상하게 마지막에는 내 발자국을 돌아보게 된다.

나는 지금 어디를 걷고 있으며, 무엇 때문에 그 길을 걷고 있는가.

아마 이 책이 독자에게 남기는 가장 좋은 질문일 것이다.

총평

좋았던 점

  • 지리와 고고학을 통해 사도행전의 문장들이 구체적인 현실로 살아난다
  • 바울을 위대한 개인이 아니라 고통하고 움직이는 인간으로 만나게 한다
  • 지도와 현장을 결합한 30년 연구의 결과물 — 단순한 성지순례 가이드가 아니다
  • 안디옥 교회의 역할을 강조하며 신약 선교의 공동체적 성격을 드러낸다

아쉬운 점

  • 사도행전과 바울서신의 연대 재구성에서는 학자별로 견해가 다르다
  • 고고학적 확실성이 저자의 해석을 자동으로 정당화해주는 것은 아니다
  • 신학적 논쟁보다 역사-지리 관심사에 무게중심이 있다

이런 분께 권합니다

  • 사도행전의 지명이 자꾸 헷갈리는 사람
  • 바울서신을 읽으며 역사적 배경을 알고 싶었던 사람
  • 성경 속 지리와 고고학에 관심 있는 신도

한 줄로 남기면

“성경의 문장에 지도를 겹치면, 종이 위의 글이 땅 위의 행동이 된다.”

자주 묻는 질문

N.T. 라이트의 『바울 평전』과는 어떻게 다른가요?
라이트는 제2성전기 유대교와 로마 제국의 거대한 사상적 배경에서 바울의 신학을 재구성한다면, 워커는 독자를 길 위에 세운다. 긴 토론을 나누는 것 같은 라이트의 책과 달리, 워커의 책은 바울을 따라 몇 킬로미터 걸어가는 경험을 준다. 두 책은 서로를 보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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