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가 넘치는 인생이 기쁨이 넘치는 인생이다
이찬수 목사의 『감사』를 읽고 일주일간 감사일기를 직접 써보며 겪은 변화와 한계, 그리고 감사가 폭력이 되지 않으려면 무엇이 필요한지 정리한 독서 기록.
책 정보
“감사는 형편이 좋아져서 나오는 기분이 아니라, 형편에 마음의 주도권을 넘기지 않으려는 선택이다.”
목차
나는 참 감사가 없는 인생을 살아온 것 같다. 아내에게는 반찬이 맛없다고 말한다. 아이들에게는 공부 안 한다고 책망한다. 혼자 있을 때는 내 부족한 면을 떠올리며 스스로를 정죄한다. 하루 중 내 입과 마음에서 나오는 말의 상당 부분이 불평이라는 걸, 이찬수 목사의 『감사』를 읽으면서야 인정했다.
표지에 적힌 문구가 “내 삶을 변화시키는 가장 강력한 능력"이다. 처음엔 좀 과한 표현이라고 생각했다. 감사가 무슨 능력씩이나 되나 싶었다. 책을 다 읽고 나서는 저 문장이 이 책의 요약이라는 걸 알았다.
이 책이 내 영혼에 울림을 준 건 새로운 정보를 많이 알려줘서가 아니다.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을 더 이상 모른 척할 수 없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감사는 기분이 아니라 선택이라는 말
『감사』는 2020년 12월 규장에서 나온 252쪽 분량의 신앙 에세이다. 분당우리교회 담임목사로 사역해 온 저자가 교회 공동체와 함께 실천한 ‘감사 목회’의 경험을 성경 묵상과 목회 현장의 이야기로 풀어냈다. 책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뉜다. 페이지 하단 러닝 헤드를 보면 1부 ‘언제나, 감사하라’, 2부 ‘더 깊이 감사하라’, 3부 ‘그럼에도, 감사하라’로 이어진다. 감사의 폭에서 시작해 깊이로, 마지막엔 고난 한복판까지 밀고 들어가는 구성이다.
신학 이론을 촘촘하게 논증하는 책은 아니다. 설교와 묵상, 생활 속 실천을 엮은 안내서에 가깝다. 그래서 쉽게 읽힌다. 그런데 책장을 덮으면 만만치 않은 질문이 남는다. 나는 정말 감사하며 살고 있는가.
이 책이 말하는 감사는 기분이 아니다. 좋은 일이 생겼을 때 저절로 터져 나오는 반응만을 감사라고 부르지 않는다. 저자는 감사를 선택이고 훈련이며 능력이라고 말한다. 형편이 좋아져서 감사하는 게 아니라, 형편에 내 마음의 주도권을 넘겨주지 않기 위해 감사를 선택한다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감사의 반대말을 다시 생각하게 됐다. 감사의 반대는 불평이 아니라 ‘망각’일지도 모른다. 이미 받은 은혜를 잊고, 없는 것만 확대해서 보는 시선이 우리를 불평으로 끌고 가기 때문이다.
빅터 프랭클에서 시작하는 5장
1부의 5장 제목은 ‘감사를 선택하라’다. 이 장은 성경이 아니라 빅터 프랭클의 말로 시작한다.
인용된 문장은 이렇다. “한 인간에게서 모든 것을 빼앗아갈 수 있지만 한 가지 자유는 빼앗아갈 수는 없다. 그것은 어떤 상황에 놓이더라도 삶에 대한 태도를 선택할 수 있는 자유이다.”
저자는 ‘삶에 대한 태도를 선택할 수 있는 자유’라는 표현이 자기 눈길을 끌었다고 적었다. 그리고 이게 프랭클 본인의 이야기라는 점을 짚는다. 유대인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갇혀 죽음의 문턱을 넘나들었던 사람의 말이라는 것이다. 어제까지 같이 지내던 동료가 차례로 가스실로 끌려가는 자리에서 나온 문장이다.
감사를 말하려고 수용소 이야기부터 꺼내는 순서가 인상적이었다. 감사를 형편 좋은 사람의 여유로 두지 않겠다는 선언처럼 읽혔다.
선택, 훈련, 능력
5장 뒤로는 다니엘을 본문 삼아 감사의 세 가지 성격이 차례로 나온다. 소제목이 아예 그렇게 붙어 있다.
첫째는 ‘감사는 선택이다’. 다니엘에게는 감사할 조건이 하나도 없었다고 저자는 쓴다. 감사는커녕 불안과 두려움, 하나님에 대한 원망으로 가득 차야 하는 상황이었고, 악한 정적들에게 둘러싸여 그들의 올가미에 갇힌 절체절명의 위기였다. 그런데도 다니엘은 감사를 택했다.
둘째는 ‘감사는 훈련이다’. 여기서 저자가 드는 예가 시편 57편의 다윗이다. 다윗이 아무 갈등 없이 곧장 감사를 말하게 된 게 아니라고 한다. 1절부터 7절까지 하나님을 바라보다가 원수를 보고 마음이 무너지고, 회복되는가 싶으면 다시 현실 앞에 함몰되고, 힘을 내는가 싶으면 또 무너지는 과정을 반복한다. 그 끝에 감사가 나온다.
이 대목이 좋았다. 성경 속 인물의 감사도 한 번에 완성되지 않았다는 것. 왔다 갔다 하는 게 실패의 증거가 아니라 훈련의 과정이라는 것.
셋째는 ‘감사는 능력이다’. 다니엘이 감사할 조건이 하나도 없을 때 ‘앞당겨’ 감사했고, 이후의 일에서 그 앞당긴 감사의 내용이 그대로 구현되었다는 이야기다. 소제목도 ‘미리 감사의 기적’으로 이어진다.
솔직히 말하면 이 부분이 가장 조심스러웠다. 감사하면 원하는 일이 이루어진다는 주문처럼 읽힐 여지가 있어서다. 다만 앞뒤 문맥을 같이 보면, 이 책이 말하는 능력은 결과를 끌어오는 힘이라기보다 고난이 계속되어도 영혼이 무너지지 않게 붙드는 힘에 가깝다. 타인의 성공을 질투만 하지 않고 축복할 수 있게 하는 힘, 부족한 가운데서도 나눌 수 있게 하는 힘. 감사의 기적은 환경의 반전보다 감사하는 사람 자신이 달라지는 데서 먼저 일어난다.
오래 남은 네 문장
밑줄 그은 문장 중 지금도 자주 떠오르는 것들을 정리했다.
| 문장 | 내가 읽은 의미 |
|---|---|
| 감사는 표현할 때 완성된다 | 마음속 감사는 아직 절반이다 |
| 감사는 선택이다 | 상황은 못 골라도 시선은 고를 수 있다 |
| 감사는 훈련이다 | 저절로 생기는 감사만 기다리면 평생 못 바뀐다 |
| 감사는 능력이다 | 무너지지 않게 붙드는 힘 |
첫 번째 문장이 가장 아팠다. 마음으로 고마워하는 것과 실제로 “고맙다"고 말하는 것 사이에는 생각보다 큰 거리가 있다. 나는 아내에게 가장 감사하면서도 아내에게 가장 무심했다. 가까운 관계일수록 사랑과 수고를 당연한 것으로 소비하기 쉽다.
“감사는 선택이다"라는 말도 오래 남았다. 감사를 감정의 문제로만 보면, 감사할 수 있는 날보다 그렇지 못한 날이 훨씬 많다. 그런데 선택이라고 생각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오늘의 상황은 못 고른다. 그러나 무엇을 바라볼지는 고를 수 있다. 감사는 현실을 바꾸기 전에, 현실을 바라보는 내 위치를 먼저 바꾼다.
환경을 초월한 감사
2부로 넘어가면 톤이 한 단계 깊어진다. ‘더 깊이 감사하라’라는 부 제목 아래, 얕은 감사와 깊은 감사를 구분한다.
여기서 드는 예가 다윗과 시므이다. 다윗은 한 나라의 왕이었지만 자기 아들의 반란으로 쫓겨 가는 비참한 상황을 겪는다. 그 과정에서 시므이라는 사람이 얼마나 다윗을 조롱하고 괴롭혔는지 모른다. 부하들은 시므이의 목을 베어 버리겠다고 격분했다.
그런데 다윗의 대답이 놀랍다. 책에 인용된 사무엘하 16장 10절 새번역은 이렇다. “스루야의 아들아, 나의 일에 너희가 왜 나서느냐? 주님께서 그에게, 다윗을 저주하라고 분부하셔서 그가 저주하는 것이라면, 그가 나를 저주한다고, 누가 그를 나무랄 수 있겠느냐?”
저자는 이 여유로움이 어디서 나왔는지 묻는다. 그리고 우리가 왜 이런 넉넉함을 갖기 어려운지, 왜 이렇게 안달복달하며 환경에 함몰되어 날마다 온탕과 냉탕을 오가며 사는지 되묻는다. 답은 우리의 감사가 얕은 수준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같은 페이지 왼쪽에는 장기기증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한 가정, 딸의 병상을 지키며 자녀를 떠나보내면서도 감사함으로 예배를 드린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저자는 이걸 ‘환경을 초월하는 능력’이라고 부른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마음의 기쁨을 빼앗기지 않는 능력.
읽으면서 마음이 복잡했다. 저 자리에 서 본 적 없는 내가 이 문장을 쉽게 인용해도 되나 싶었다.
참기름 짜듯이 쥐어짜라는 말
책에는 감사할 것이 생각나지 않으면 참기름 짜듯이 쥐어짜보라는 대목이 나온다. 표현은 소박하지만 현실적이다. 감사는 언제나 우아하게 시작되지 않는다.
마음이 메마른 날에는 살아 있다는 사실, 따뜻한 물을 쓸 수 있다는 사실, 내 이름을 불러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부터 억지로라도 적어야 한다. 그렇게 사소한 것을 헤아리다 보면, 삶이 생각보다 많은 선물 위에 세워져 있었다는 걸 알게 된다.
이 책에서 가장 크게 와닿은 지점은 저자가 감사를 소유의 양이 아니라 ‘시선의 방향’과 연결한다는 것이었다. 현대인은 결핍보다 비교 때문에 더 자주 불행하다. 스마트폰을 열면 더 넓은 집, 더 좋은 직장, 더 화목해 보이는 가족이 끝없이 나온다. 이런 환경에서는 받은 것을 세는 능력보다 남이 가진 것을 세는 능력이 훨씬 빨리 발달한다. 감사는 이 비교의 회로를 잠시 끊고 내게 맡겨진 삶으로 돌아오는 행위다. 더 많이 가져야 행복하다는 소비사회의 약속에 맞서는, 작지만 영적인 저항이기도 하다.
일주일 동안 감사일기를 써봤다
책을 읽고 잠들기 전에 감사한 일 세 가지를 적기로 했다. 실제로 어땠는지 그대로 적는다.
- 첫날: 꽤 그럴듯한 문장을 쓰려다 금세 막혔다. 결국 ‘점심이 맛있었다’, ‘버스를 오래 기다리지 않았다’, ‘오랜만에 한 사람에게 안부 연락이 왔다’처럼 하찮아 보이는 일을 적었다.
- 사흘째: 하루를 보내는 방식이 조금 달라졌다. 저녁에 감사거리를 만들어내려 애쓴 게 아니라, 낮 동안 지나가는 좋은 순간을 전보다 빨리 알아차리게 됐다. 문제는 그대로였는데, 문제만 보던 시야가 넓어진 거다.
- 닷새 이후: 감사일기가 의무가 되자 문장이 기계적으로 변했다. 세 개를 채우는 게 목적이 되어버렸다.
- 방식 변경: 그래서 개수를 채우는 대신 한 가지를 오래 바라보는 쪽으로 바꿨다.
사람에게 감사를 표현하는 연습은 더 직접적인 변화를 만들었다. 고마운 일을 구체적으로 말했더니 상대의 표정이 달라졌다. 그리고 나는 그 관계를 그동안 당연하게 여기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감사 훈련의 목적은 기록을 채우는 성취감이 아니다. 존재를 선물로 받아들이는 감각을 회복하는 데 있다. 감사일기가 숙제처럼 느껴진다면 개수부터 줄이는 게 낫다.
내 영혼이 내 속에서 피곤할 때에
3부 ‘그럼에도, 감사하라’의 10장 제목이 ‘내 영혼이 내 속에서 피곤할 때에 감사하라’다. 제목만 보고 잠시 멈췄다.
이 장은 『호르메시스, 때로는 약이 되는 독의 비밀』이라는 책 이야기로 시작한다. 호르메시스는 독성 물질이라도 소량을 사용하면 오히려 좋은 효과를 낸다는 의미라고 한다. 예로 든 게 방사선이다. 병원에서 엑스레이를 찍을 때 얼마나 조심하는지 모른다. 신체의 다른 곳은 노출되지 않도록 두꺼운 것으로 겹겹이 차단하고, 촬영하는 직원은 아예 밖으로 나가서 단추를 누른다. 그렇게 위험한 것이 방사선인데, 아이러니하게도 암에 걸리면 방사선 치료를 받는다. 4, 5주씩 가서 방사선을 쪼인다.
고통을 다루는 비유로 이만한 것도 드물다 싶었다. 고통 자체가 좋은 것이라는 말이 아니다. 다만 같은 것이 어떤 용량과 어떤 자리에서 쓰이느냐에 따라 사람을 무너뜨리기도 하고 살리기도 한다는 것. ‘그럼에도 감사하라’라는 부 제목이 이 비유 위에 놓여 있다.
감사가 폭력이 되지 않으려면
이 책을 읽으며 의문도 생겼다. 고난 가운데 미리 감사하는 ‘선행하는 감사’가 잘못 쓰이면, 타인의 아픔을 너무 빨리 봉합하는 말이 되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우울증을 앓는 사람이나 사랑하는 이를 잃은 사람에게 “그래도 감사해야지"라고 말하는 순간, 감사는 복음이 아니라 폭력이 된다. 성경의 감사는 탄식을 제거하지 않는다. 시편에는 감사만큼이나 절규가 많고, 예수도 나사로의 무덤 앞에서 울었다.
그러니 깊은 감사는 슬픔을 건너뛰는 기술이 아니라, 충분히 울면서도 하나님을 놓지 않는 믿음이어야 한다. 감사가 고통의 원인을 외면하거나 부당한 현실에 침묵하는 구실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이건 책에 대한 비판이라기보다, 이 책을 읽는 사람이 스스로 세워야 할 안전장치라고 생각한다.
앞서 본 다윗의 시편 57편이 왔다 갔다 했다는 대목이 여기서 다시 유효하다. 감사는 슬픔을 지운 자리에서가 아니라, 슬픔과 함께 오르락내리락하는 과정 끝에 나온다.
함께 읽으면 좋은 두 권
이 책을 읽으며 앤 보스캠프의 『천 개의 선물』이 떠올랐다. 두 책 모두 일상의 작은 은혜를 기록하는 일이 사람의 영혼을 바꾼다고 말한다. 다만 『천 개의 선물』이 상실을 통과한 한 인간의 내면과 성찬의 영성을 시적인 언어로 탐색한다면, 『감사』는 목회자의 설교처럼 명료하고 실천적이다.
반대로 바버라 에런라이크의 『긍정의 배신』과 나란히 읽어도 흥미롭다. 에런라이크는 무조건 잘될 것이라는 긍정주의가 개인에게 책임을 떠넘기고 구조적 문제를 은폐할 수 있다고 비판한다. 이 경고를 곁에 두면 『감사』를 더 건강하게 읽을 수 있다. 기독교적 감사는 “다 잘될 거야"라는 자기최면이 아니라, 잘되지 않을 때도 진실을 외면하지 않으면서 받은 은혜를 붙드는 신뢰여야 하기 때문이다.
이 책이 맞는 사람, 맞지 않는 사람
읽기 전에 확인해보면 좋을 체크리스트다.
- 불평이 습관이 되어 있다
- 신앙은 오래됐는데 은혜에 대한 감격이 무뎌졌다
- 가까운 사람에게 고마움을 표현하지 못한다
- 마음이 바빠 삶의 좋은 것들을 알아보지 못한다
하나라도 해당한다면 이 책은 작은 정지 버튼이 되어줄 거다. 반대로 깊은 신학적 논증이나 고난의 문제에 대한 철학적 해답을 기대한다면 다소 단순하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럼에도 이 책의 장점은 선명하다. 감사에 관해 새로운 정보를 많이 주기보다, 이미 알고 있는 진리를 오늘의 행동으로 옮기게 만든다. 감사는 현실을 미화하는 말이 아니라, 현실 속 은혜를 끝내 놓치지 않겠다는 결단이다.
마치며
- 이찬수 목사의 『감사』는 감사를 감정이 아니라 선택이고 훈련이며 능력이라고 말한다. 다니엘과 다윗을 본문 삼아 이 셋을 차례로 풀어낸다.
- 감사의 반대말은 불평보다 ‘망각’에 가깝다. 받은 것을 잊는 순간 불평이 시작된다.
- 일주일간 감사일기를 써보니, 사흘째부터 문제를 보는 시야가 아니라 좋은 순간을 알아차리는 속도가 달라졌다.
- 다만 개수를 채우는 순간 기록은 기계적으로 변한다. 세 개를 채우기보다 한 가지를 오래 보는 편이 낫다.
- 감사는 타인의 슬픔을 봉합하는 말이 되어서는 안 된다. 충분히 울면서도 하나님을 놓지 않는 것이 깊은 감사다.
책을 덮은 뒤 남은 가장 중요한 질문은 이것이었다. 내게 감사할 일이 있는가가 아니라, 나는 오늘 받은 것을 알아볼 만큼 깨어 있는가. 그 질문 하나만으로도 이 책은 충분히 읽을 가치가 있다.
총평
좋았던 점
- 감사를 선택·훈련·능력 세 갈래로 나눠 설명해 실천 지점이 분명하다
- 시편 57편의 다윗처럼 마음이 오르락내리락하는 과정을 실패가 아니라 훈련으로 본다
- 설교와 묵상, 생활 속 실천을 엮은 구성이라 쉽게 읽힌다
아쉬운 점
- ‘미리 감사하면 이루어진다’는 대목은 자칫 주문처럼 읽힐 여지가 있다
- 깊은 신학적 논증이나 고난에 대한 철학적 해답을 기대하면 단순하게 느껴진다
- 감사가 타인의 슬픔을 서둘러 봉합하는 말이 되지 않도록, 독자가 스스로 안전장치를 세워야 한다
이런 분께 권합니다
- 불평이 습관이 되어 있는 사람
- 신앙은 오래됐는데 은혜에 대한 감격이 무뎌진 사람
- 가까운 사람에게 고마움을 표현하지 못하는 사람
- 마음이 바빠 삶의 좋은 것들을 알아보지 못하는 사람
한 줄로 남기면
“감사는 형편이 좋아져서 나오는 기분이 아니라, 형편에 마음의 주도권을 넘기지 않으려는 선택이다.”
자주 묻는 질문
이찬수 『감사』는 어떤 책인가?
신앙이 없어도 읽을 만한가?
감사일기는 매일 몇 개씩 써야 하나?
힘든 일을 겪는 사람에게 감사를 권해도 될까?
『감사』와 함께 읽으면 좋은 책이 있나?
함께 읽으면 좋은 책
먼저 섬기는 사람이 리더가 된다 - 서번트 리더십 원전
서번트 리더십 원전 · 로버트 K. 그린리프
따르는 사람의 수가 아니라, 곁에서 자란 사람의 키로 리더의 크기가 드러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