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적인 것을 버린 인간, 더 많은 신들을 만들다 - 프란시스 쉐퍼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살 것인가』
쉐퍼의 고전을 읽고 정리한 서평. 서양 문명의 거대한 흐름 속에서 사상이 어떻게 문화와 제도가 되는지, 그리고 절대적 기준을 잃은 인간이 무엇을 절대화하는지에 관한 통찰.
책 정보
“신을 버린 인간이 정말 자유로워졌는가. 아니면 더 많은 신들을 만들어낸 것인가.”
목차
쉐퍼의 책은 무게감이 있고 내용이 알차다. 그는 참으로 위대한 신학자이자 사상가다.
프란시스 쉐퍼의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살 것인가》는 1976년에 출간된 기독교 세계관의 고전이다. 단순한 목회자나 신학자가 아니라 철학, 미술, 음악, 정치, 과학을 함께 바라봤던 쉐퍼는 기독교가 한 사회의 문화와 문명을 어떻게 형성하는지를 집요하게 추적했다. 스위스의 라브리 공동체를 세워 신앙을 잃어버린 젊은이들과 끊임없이 대화했던 그의 경험도 이 책 곳곳에 배어 있다.
제목만 보면 개인의 경건이나 신앙생활에 관한 책처럼 보이지만 실제 내용은 훨씬 크다. 로마 제국에서 시작해 중세, 르네상스, 종교개혁, 계몽주의, 현대 철학과 과학, 예술, 정치까지 거의 서양 문명 전체를 훑는다.
쉐퍼가 정말 묻는 것
그런데 쉐퍼가 정말 묻고 있는 것은 역사 지식이 아니다.
“사람이 무엇을 믿느냐가 결국 어떤 세상을 만들어내는가?”
이 질문이 책 전체를 관통한다. 쉐퍼가 로마 제국을 바라보는 시선은 흥미롭다. 로마에는 법도 있었고 질서도 있었고 놀라운 군사력과 행정 체계도 있었다. 하지만 그 사회를 떠받치는 절대적 기준이 없었기 때문에 결국 황제와 국가가 절대적인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고 본다.
절대적인 것을 버린 인간
여기에서 쉐퍼의 중요한 통찰이 나온다.
인간은 절대적인 것을 버리고 살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이다.
하나님을 절대자로 인정하지 않으면 인간은 자유로워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국가나 권력이나 다수의 의견이나 개인의 욕망 같은 다른 무엇인가를 절대화하게 된다.
이 대목을 읽으며 오늘날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현대인은 누구에게도 지배받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내 인생은 내가 결정한다"는 말은 거의 시대의 신조처럼 되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렇게 자유를 강조하는 사회에서 사람들은 여론, 알고리즘, 소비문화, SNS의 평가에 놀라울 정도로 민감하다.
신을 버린 인간이 정말 자유로워졌는가. 아니면 더 작고 더 많은 신들을 만들어낸 것인가.
사상이 문화가 되는 길
쉐퍼가 이 책에서 반복해서 강조하는 내용을 내 언어로 압축하면 이것이다.
- 인간에게 절대적인 기준이 사라지면 결국 인간 자신이 기준의 자리를 차지한다.
-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보지 않는다면 인간 존엄성의 근거도 점점 불안정해질 수밖에 없다.
- 철학은 철학자의 책상 위에서 끝나지 않고 언젠가 문화와 제도와 일상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 자유는 진리와 함께 있을 때에만 오래 유지될 수 있다.
내가 이 책에서 가장 감명 깊었던 부분은 바로 사상과 삶의 연결이었다. 우리는 철학을 현실과 동떨어진 학문으로 생각하기 쉽다. 니체가 무엇을 말했든, 칸트가 무엇을 말했든 내 삶과 무슨 관계가 있느냐고 생각한다.
그러나 쉐퍼는 철학자가 던진 한 문장이 수십 년 뒤에는 대학의 사상이 되고, 다시 예술가들의 작품에 들어가고, 시간이 더 지나면 대중문화가 되며, 결국 평범한 사람들의 상식이 된다고 설명한다.
생각해 보면 정말 그렇다. “진리는 사람마다 다르다.” “내가 행복하면 그것이 좋은 것이다.”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는다면 무엇이든 괜찮다.” 요즘은 너무 자연스럽게 사용하는 말이지만 각 문장 뒤에는 거대한 철학적 전제가 숨어 있다.
인간은 무엇인가. 선과 악은 누가 결정하는가. 진리는 존재하는가. 자유에는 한계가 있는가. 대부분의 사람은 이런 철학적 질문에 답하면서 살아간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실제 삶에서는 이미 매일 답하고 있다.
그래서 쉐퍼를 읽은 뒤에는 문화가 조금 다르게 보인다. 영화 한 편을 보면서도 “이 작품은 인간을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을 하게 된다. 광고를 보면서도 “여기에서 말하는 행복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된다. 정치적 주장에 대해서도 “이 주장의 인간관은 무엇인가?“를 묻게 된다.
이것이 쉐퍼가 말하는 세계관적 사고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역사의 렌즈로 읽기
특히 쉐퍼가 종교개혁을 중요하게 평가하는 이유가 인상 깊었다. 그가 보기에 성경적 인간관은 인간을 동시에 높이고 낮춘다. 인간은 하나님이 아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이성과 권력과 욕망은 절대적인 기준이 될 수 없다.
그러나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다. 그러므로 한 사람의 생명과 자유와 존엄성은 국가나 사회가 마음대로 부여했다가 빼앗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나는 이것이 기독교 인간론의 굉장히 중요한 긴장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을 지나치게 높이면 인간이 신이 된다. 그러나 인간을 지나치게 낮추면 인간을 도구처럼 취급하게 된다. 성경은 인간에게 “너는 하나님이 아니다"라고 말하면서 동시에 “너는 하나님의 형상이다"라고 말한다. 겸손과 존엄성이 동시에 성립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며 과연 쉐퍼의 모든 역사 해석에 동의할 수 있는가 하는 의문도 생겼다. 쉐퍼의 역사 서술은 때때로 지나치게 선명하다. 성경적 세계관이 강했던 시대에는 문명이 건강했고, 인간 중심주의가 강해지면서 문명이 무너졌다는 식의 흐름이 강하게 나타난다.
그런데 실제 역사는 훨씬 복잡하다. 기독교가 사회적으로 강력한 영향력을 갖고 있던 시대에도 전쟁과 폭력과 권력 남용은 존재했다. 반대로 계몽주의 전통 속에서도 인권과 자유, 권력 제한에 중요한 공헌을 한 사람들이 등장했다. 과학 역시 단순히 인간 중심주의의 결과로 설명할 수 없다. 초기 근대과학의 많은 인물은 오히려 하나님이 질서 있는 세계를 창조하셨다는 믿음 때문에 자연을 연구했다.
그래서 나는 쉐퍼를 읽을 때 그의 역사 설명을 그대로 하나의 정답처럼 받아들이기보다는 역사를 해석하는 강력한 기독교적 렌즈로 보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한다. 렌즈는 많은 것을 선명하게 보여주지만 모든 것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이렇게 비판적으로 읽어도 쉐퍼의 핵심 질문은 여전히 강력하다.
세상 비판에서 자기성찰로
책을 덮고 결국 나에게 돌아오는 질문은 이것이다.
나는 무엇을 믿고 있으며, 실제로는 무엇을 의지하며 살고 있는가.
이 책을 읽은 뒤 내 삶에서 가장 먼저 생각해 본 것은 돈과 안정이었다. 나는 하나님의 섭리를 믿는다고 말한다. 그러나 중요한 결정을 앞두면 하나님보다 먼저 경제적 손익을 계산할 때가 많다.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말하면서도 나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다르게 대하기도 한다. 성경이 진리라고 고백하면서도 내가 받아들이기 불편한 말씀 앞에서는 시대적 상황을 핑계 삼고 싶은 마음도 생긴다.
그렇다면 세속주의는 교회 밖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면서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태도 자체가 세속주의일 수 있다.
이 지점에서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살 것인가》는 문화비평서에서 영적인 자기성찰의 책으로 바뀐다. 세상이 왜 이렇게 되었느냐고 묻는 것은 쉽다. 하지만 쉐퍼의 질문을 끝까지 따라가면 세상을 비판하는 것으로 끝낼 수 없다. “그러면 너는 어떻게 살 것인가?” 그 질문이 결국 나에게 돌아오기 때문이다.
신앙은 월요일 아침에 증명된다
C. S. 루이스의 《인간 폐지》와 비교해서 읽어도 재미있다. 루이스 역시 객관적인 도덕 질서가 사라질 때 인간 자신이 결국 파괴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다만 루이스가 인간 본성과 도덕 경험에서 출발한다면, 쉐퍼는 서양 문명의 거대한 흐름을 따라가며 같은 문제를 보여준다.
데이비드 웰스의 《신학 실종》과 함께 읽으면 더 날카롭게 다가온다. 쉐퍼가 현대 사회가 어떻게 절대적인 진리를 잃어버렸는지를 보여준다면, 웰스는 그렇게 형성된 현대 문화가 교회 안에 어떻게 들어왔는지를 분석한다.
두 사람의 이야기를 연결하면 꽤 불편한 결론에 이르게 된다. 세상과 교회의 문제를 완전히 따로 놓을 수 없다는 것이다. 교회 역시 성공, 성장, 효율, 감정적 만족을 절대적인 기준으로 삼기 시작한다면 세속 사회와 전혀 다른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기 어렵다.
결국 쉐퍼의 책이 내게 준 가장 중요한 교훈은 이것이다.
기독교 신앙은 단순히 무엇을 믿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그 믿음으로 현실 전체를 어떻게 바라보고 살아가느냐의 문제다.
창조를 믿는다면 사람을 함부로 대할 수 없다. 타락을 믿는다면 인간의 권력과 이성을 무조건 신뢰할 수 없다. 구속을 믿는다면 아무리 사회가 어두워 보여도 냉소주의에 빠질 수 없다. 부활을 믿는다면 현재의 성공과 실패가 내 인생의 최종적인 의미가 될 수 없다.
신앙은 결국 월요일 아침에 증명된다. 직장에서 사람을 어떻게 대하는지, 돈을 어떻게 쓰는지, 실패했을 때 무엇을 붙잡는지, 아무도 보지 않을 때 무엇을 선택하는지가 내가 실제로 믿는 세계관을 보여준다.
그래서 이 책은 철학과 역사를 좋아하는 사람에게만 권하고 싶지 않다. 오히려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했는데도 “기독교가 내 현실의 삶과 정확히 무슨 관계가 있는가?“라는 의문이 있는 사람에게 꼭 한번 권하고 싶다. 정치, 경제, 예술, 과학, 교육을 신앙과 분리된 영역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에게도 상당한 자극을 줄 것이다.
쉐퍼의 모든 역사적 판단에 동의하지 않아도 된다. 오히려 질문하면서 읽는 것이 더 좋다. 하지만 책을 덮은 뒤에도 제목만큼은 쉽게 잊히지 않는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살 것인가.
나는 결국 이렇게 대답하고 싶다. 하나님이 실제로 존재하신다면 하나님이 계신 것처럼 살아야 한다.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이라면 사람을 그렇게 대해야 한다. 그리스도가 정말 부활하셨다면 현재의 세상이 전부인 것처럼 살아서는 안 된다. 진리가 실제로 존재한다면 나에게 편리할 때만 진리를 선택할 수도 없다.
신앙의 가장 어려운 지점은 믿는 데 있지 않을지도 모른다. 내가 믿는 것이 정말 참인 것처럼 살아가는 것. 쉐퍼는 바로 그 지점을 집요하게 찌른다.
그래서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살 것인가》는 서양 문명에 관한 책이면서 동시에 한 사람의 신앙을 시험하는 책이다. 세상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분석하기 전에 내가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를 묻게 만드는 책이다. 반세기 가까운 시간이 지난 지금도 이 책은 여전히 불편하고, 여전히 읽을 가치가 있다.
총평
좋았던 점
- 사상과 삶의 연결을 추적한다 — 철학자의 말이 수십 년 뒤 대중문화가 되는 과정을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 기독교 인간론의 긴장을 명확히 한다 — 인간은 동시에 높여지고 낮춰진다
- 절대적 기준의 부재 앞에서 인간이 무엇을 절대화하는지를 꿰뚫는다
- 세상 비판에서 자기성찰로의 전환이 자연스럽다
아쉬운 점
- 역사 해석이 때때로 지나치게 선명하다 — 복잡한 현실을 이분법적으로 재단하는 경향이 있다
- 초기 근대 과학자들의 신앙적 동기를 과소평가한다
- 기독교 전통 속에서도 폭력과 권력 남용이 존재했다는 점을 충분히 다루지 않는다
이런 분께 권합니다
-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했는데도 기독교가 현실과 무슨 관계가 있는지 의문인 사람
- 정치·경제·예술·과학을 신앙과 분리된 영역이라고 생각했던 사람
- 문화 현상을 다른 눈으로 읽고 싶은 사람
한 줄로 남기면
“신을 버린 인간이 정말 자유로워졌는가. 아니면 더 많은 신들을 만들어낸 것인가.”
자주 묻는 질문
이 책은 얼마나 어렵나?
1976년에 나온 책인데 지금도 읽을 가치가 있나?
기독교 신앙이 없어도 읽을 수 있나?
함께 읽으면 좋은 책
하루 종일 하나님을 잊지 않고 살아가기 - 루박의 기도일기
프랭크 루박의 기도일기 · 프랭크 루박
아침 기도가 끝나면 하나님과의 대화도 끝난다고 생각했던 내가 무엇을 놓치고 있었는지 알게 된 책.




